임신기 여성은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증가하면서 특히 더 예민해져
'사람의 감각 가운데 복잡성으로 인해 가장 덜 알려진 영역은 후각이다. 높은 전기 전도도와 탄성을 갖는 신 물질인 탄소나노튜브 섬유를 기반으로 정밀한 인공 후각 센서를 만들 수 있다. 나노 물질이 과일에서 나오는 에틸렌 가스를 흡수했을 때 나타나는 전류의 변화를 측정해 과일의 상태를 파악한다거나, 육류의 신선도를 측정하는 식이다. 유독 가스 검출에도 쓰일 수 있다'.
공학지식이 일천해 세부 표현은 달리 썼을지 몰라도 이런 류의 뉴스를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냄새에 관한 기억이 특정 시기나 상황에 대한 인상을 뚜렷하게 해 준 특별한 경험들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선한 수박을 가르며 맡은 향기에 유년기 시골 이모 집 대청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어떤 브랜드의 향수 냄새를 맡으면 그 향수를 잘 쓰는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식 말이다.
이런 신묘한 후각에 관한 경험이 하나 더 생겼다. 아내가 임신 6주에서 11주 차를 지나면서부터다. 아내는 구토를 한다거나 음식을 못 먹는 류의 입덧은 하지 않았다. 대신 평소 즐겨 먹던 음식과 판 이하게 다른 것을 선호했다. 원래 우리 둘은 구운 소고기나 햄버거류를 즐겼는데, 이 무렵의 아내는 이런 요리에서 나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했다. 반면 향신료나 고추장이 재료의 향을 덮어 버리는 음식을 선호하게 됐는데, 임신 전에는 선호하지 않던 것들이었다. 이런 중에 아내의 후각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나는 느끼지도 못했는데 집안에 묵은 냄새가 난다며 환기를 시키다가도 저 멀리 어딘지도 모를 집에서 굽는 생선 냄새가 난다며 금세 창문을 닫는 일이 잦았다. 할인마트에서는 무빙워크를 타고 내려가다가 지하층에서 판매하는 핫도그와 피자 냄새를 맡는 순간 컨디션이 급전직하해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육류 시식 코너 같은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도 후각이 좋은 편이었는데,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 같은 아내에게 우스개로 ‘개 코’라고 했지만 그 민감도나 정밀함을 감안해 보면 ‘마약 탐지견’ 수준이었다. 공신력 있는 자료를 찾아보니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 대비 후각이 발달한 편인데, 임신기 여성은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증가하면서 특히 더 예민해지는 원리란다.
청력도 ‘소머즈’급으로 격상됐다. 층간 소음이 있는 아파트임을 감안하더라도, 윗집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정도로 귀가 예민해진 것은 놀랄 일이었다. 단순히 호르몬 변화에 기인해 이런 증상들이 나타날까?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새 생명을 보호하려는 모체의 본능 아닐까? 잘못된 음식이나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피하려고 오랜 시간 유전자에 각인된 방어 기제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의학적, 유전학적 근거 없이 내 멋대로 상상해 본 얘기다.
흔히 개의 후각 세포 수가 사람보다 몇 백배 많다고 한다. 문헌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서 사람보다 몇 천 배에서 1억 배 냄새를 잘 맡는단다. 문득 개들을 위로하고 싶어 졌다. ‘의도치 않게 별별 쓸데없는 불쾌한 냄새를 맡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고. 엉뚱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평소 잘 먹지도 않던 라면 하나를 끓여 바쳐야 했다. 알싸하고 칼칼한 것이 당긴단다.
예민함은 몇 주 만에 잦아들었다. 왠지 서운했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