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은 분해의 역순

현실계에서 준법 운운하며 투사가 되기엔 각오해야 할 것이 많다

by moonshot

장난감이나 기계를 수리할 때 격언처럼 따르는 문구가 있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뜯는 순서대로 부속품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재 조립 시 그 순서를 거꾸로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단순한 원리를 따르지 않을 경우, 나사가 한두 개쯤 남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원위치에서 벗어난 조립은 기계의 성능을 떨어트리거나 다른 고장을 일으킨다.


예정일을 석 달쯤 앞두고 보니 아내의 출산 휴가 시점을 저울질해야 하고, 회사라는 큰 기계 속 부품이 잠시 빠져나왔다가 재 조립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숭고한 출산의 경험을 기계 수리에 빗대는 것이 일견 부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양친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를 하다가 결혼했다. 아내는 서울 태생이다. 아이가 태어나도 주중 생이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친가에 아이를 맡기기 힘든 구조다. 결국 처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 장모님은 먼저 결혼한 처제네 조카를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키워 내셨다. 6년 전보다 기력이 떨어진 장모님께 또 한 번의 큰 숙제를 안겨 드리는 셈이다.


가계의 장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지우려면 둘이 나가 벌어야 하는 형편이고, 장모님 신세를 지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가 회사를 쉬며 양육하면 될 일이다. 이런 처지에 놓일 법한 사람들을 위해 육아 휴직이라는 제도가 있다. 철저히 보장되는 일터도 있지만, 아내 회사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사정은 이렇다. 대기업군에 속하고 이런저런 복지 제도도 꽤 갖춰 놓은 아내의 회사는 업종 특성상 오랜 기간 남성 비중이 높았다. 2017년 초에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 위반 사업장 27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자연히 마초적인 문화가 뿌리 깊고, 여성과 모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은 희박하다. 보통의 회사라면 출산한 여직원이 3개월 산휴를 마치고 1년가량의 육아 휴직을 갖도록 배려해 주지만, 이 회사는 그럴 경우 원래 자리로 복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대체 인력을 뽑아 주지 않고, 3개월 이상 자리를 비우면 원치 않는 부서로 비켜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를 떼 놓고 일터로 복귀하거나, 모성 보호를 위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어느 것을 택해도 잔인한 것은 매한가지다. 자명한 불법이지만, 현실계에서 준법 운운하며 투사가 되기엔 각오해야 할 것이 많다. 이러다 보니 글을 쓰는 지금도, 차라리 아내 대신 내가 회사 생활을 잠시 중단하면 어떨까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아내 회사의 인사 담당자와 경영진이 모성 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만 갖춘다면 이 악순환은 중단될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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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산휴 3개월’은 그 회사 경영진이 심리적으로 설정해 놓은 생산성 전선의 최후 보루일 것이다. 그런데, 그 생산성의 분기점을 누가 제대로 검증이나 해 본 걸까? 아내를 대신해 누군가를 들인다면 그가 더 나은 기량을 발휘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시간이 지난다고 반드시 더 나아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조직을 구성하는 부품의 관점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여러 부품들과 맞물려 최적화된 부품이라면, 문제가 없는 이상 다시 원위치로 가는 게 최선일 테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그것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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