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릴레이

모든 공포를 상쇄시켜 준 것은 힘을 더해 가는 태동이었다

by moonshot

‘어서 와, 임신은 처음이지?’.


임신 6개월 차를 지나며 초반과는 다른 여러 가지 장벽을 마주했다. 초창기의 우울감이나 예민함과 달리, 신체에 일어나는 반응이 극명해져 놀람의 정도도 높아 갔다. 나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좀처럼 중간에 깨지 않는 편인데, 한밤중에 쥐가 났다며 비명을 지르는 데는 반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으악, 내 다리. 빨리 종아리 좀 주물러 봐”라는 주문에 몇 주간 밤잠을 설쳤다. 한동안 낮 시간이 몽롱했다. 20여 년 전, 깊은 잠에 들려는 순간 연병장으로 불려 나가 ‘팡파르(빵빠레)’라는 이름으로 별의별 맨몸 체조를 해야 했던 해군 훈련소의 기억이 소환됐다. 수면 박탈은 아내와 나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었다.


몇 주간 절제된 식단으로 대비한 임신 당뇨 검사 또한 이어지는 공포였다. 임신 당뇨로 진단되면 산모와 태아 모두 몇 곱절로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내는 날씬한 체형에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편인데, 첫 검사에서 기준 수치를 살짝 넘어섰다. 일반 건강 검진처럼 1회 채혈만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라 부담감이 상당했다. 긴 공복 시간을 유지한 뒤 대량으로 마시는 포도당액은 무척 불쾌한 맛인 것 같았다. 게다가 한 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세 번에 걸친 채혈을 했는데, 기다리는 과정 내내 더해지는 압박감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번째 검사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았다.


보행 중 흡연을 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지뢰밭으로 부각됐다. 흐르는 연기를 간접흡연하는 것도 문제거니와, 둔해진 임산부가 행여 담뱃불을 피하지 못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 맥락으로 ‘세상에 나쁜 담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핸들링하는 사람의 문제다.


2017년 여름을 강타한 ‘생리대 파동’은 공포의 화룡점정이었다. 임신 확인 이후 아내에게 한동안 필요 없는 물건이 됐지만, 20년 넘게 써 온 생리대가 유해 물질을 뿜어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검출된 유해 물질이 극 미량이라 인체에 유해성이 없다고 발표됐지만, 알려진 여러 부작용들과 제품 간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계속 추적할 예정이란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난임이 혹시 생리대 때문이었을까라는 생각에 뒤숭숭했다. 그새 자주 찾는 해외 구매 대행 쇼핑몰들은 유기농 생리대를 발 빠르게 전면 배치했다. 아내도 출산 후에는 그런 것들을 쓰겠단다.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누가 어떻게 챙길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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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 차를 넘어설 때는 입덧이 재발했다. 초기 입덧처럼 호르몬 변화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고, 아기가 커지면서 위가 눌려 덩달아 위산이 올라오기 때문이란다. 끓인 누룽지나 무리 없이 먹을 정도여서 여간 딱한 게 아니었다.


이 모든 공포를 상쇄시켜 준 것은 힘을 더해 가는 태동이었다. 낚싯대에 걸린 피라미의 입질 같았던 초기 태동, 작은 새의 날갯짓처럼 푸드덕거렸던 중기 태동을 지나 꿀렁대는 안마 의자처럼 강한 태동을 느끼며 우리도 힘을 낼 수 있었다. 몇 고비 넘다 보니 어느덧 막바지에 가까워졌다. 좁은 집에 육아 용품이 쌓여 간다. 다행히 폐소 공포증 같은 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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