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근속자, 간신히 출산휴가 내다

호미로 탯줄 끊을 때 보다 나아진 것은 위생 밖에 없다

by moonshot

2017년 11월 10일, 임신 37주 2일 차. 아내가 출산 휴가 전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짜다. 엄밀히 말해 출산 휴가 직전은 아니다. 열두 개쯤 남은 연차 휴가를 소진하면 12월부터 3개월 간 진짜 출산 휴가가 시작되니까. 아무튼 아내는 이 날까지 첫 회사에서 11년 8개월을 근속했다. 위대한 여정이다. 나는 13년간 세 곳의 회사를 다닌 뒤 네 번째 회사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더 그렇게 느껴졌다.


아내는 일이 즐겁다던 나를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나 역시 일요일 밤이면 출근할 생각에 힘들어하던 아내를 신기해했다. ‘골골 백세’라고 했던가. 투덜대고 때론 힘들어하면서도 어느덧 장기 근속자가 된 모습이 대견했다.


나도 첫 회사에서는 9년 정도 근속을 했었지만, 한 회사에서만 11년 8개월을 다닌 뒤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변곡점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마음이 어떨지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애증과 아쉬움이 뒤섞였을 것이고, 복귀했을 때의 어색함이 두렵기도 할 것이라고 짐작할 뿐.


나는 출근을 앞둔 백수인지라, 며칠간 아내의 출퇴근길 운전기사 노릇을 했었다. 부른 배를 안고 회전문을 통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일시 중지(산휴)’를 누르는 날의 퇴근길 픽업은 더욱 심난했다. 무거운 몸으로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아니나 다를까. 치워놓을 짐들을 쇼핑백에 쑤셔 넣고 로비를 나서는 작은 그림자가 유독 쓸쓸해 보였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아이 나올 때까지 만이라도 잘 챙겨 먹고 푹 쉬자”.


조수석에 올라타는 아내를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고작 이런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좀 더 멋진 대사가 있었을 텐데. 설령 생각났다 해도 돋을 닭살이 무서워서 해내진 못 했겠지만.


내가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까지 딱 한 달의 시간이 남은 터였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육아용품을 구입하고, 부족했던 잠도 실컷 잤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피해 맛집을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출산 육아 선배들을 만나 원 포인트 레슨도 받고, 평판 좋은 산후 도우미를 소개받아 계약도 할 수 있었다. 주말에 인파로 가득 차는 쇼핑몰을 평일에 어슬렁대는 재미도 좋았다. 무엇보다 아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며 불안을 나누고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이직 전 휴식 기간을 갖지 못했더라면 엄두도 못 낼 일들이다. 모성 보호에 관한 논의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부성 보호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노릇이다.


대부분의 맞벌이 아빠들은 일터에서 진통 소식을 듣고 황급히 병원으로 간다. (슬프게도, 간혹 과음 상태에서 적시에 합류하지 못하는 분 들도 계신 걸로 안다. R.I.P.) 짧은 기간이나마 산전 준비를 같이 해보니 손 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약 부부 모두가 고향을 떠나 생활하고 있다면, 도움 줄 식구가 없어서 더더욱 고생일 것이다. 그런 중에 산모를 입퇴원 시키고 조리원을 들락거리며 잔 신부름 정도 하다가 지쳐버린다. 사회의 배려가 딱 그만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세종은 노비에게 산전 한 달, 산후 100일의 출산휴가를 줬다고 한다. 노비의 남편에게는 출산을 앞둔 아내를 도울 수 있도록 1달의 휴가를 줬단다. 아내는 개인 연차를 제외하면 출산 전후 90일의 휴가를 보장받았다. 이 무렵 공교롭게도 나의 자발적 백수기간이 겹쳤다. 근근이 노비 남편 정도의 구실을 했다. 이마저도 다른 남편들은 언감생심이다.


‘옛날엔 밭 매다가 호미로 탯줄 끊었다’고? 하향평준화 논리에 매몰되지 말자.


호미로 탯줄 끊을 때 보다 나아진 것은 위생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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