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보호’ 구호는 넘쳐나지만 챙기는 건 셀프서비스
출산 휴가를 시작하며 아내가 20여 일 간 쉬는 동안 뱃속 아기의 성장 곡선이 가팔라졌다. 열흘간 이어졌던 지난 추석 연휴 때도 그랬다. 초음파실에서 들은 얘기로는 직장맘들이 대체로 그렇단다. 추정일 뿐이지만, 집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산모에 비해 아기가 더디게 자라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여러 사정으로 막판까지 전력투구 한 맞벌이지만, 현장 경험이 많은 전문가에게 듣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더 아렸다. 내 마음이 이런데 품고 키운 어미의 마음은 오죽할까.
‘모성 보호’ 구호는 넘쳐나지만 챙기는 건 셀프서비스다. 워킹맘의 비애다.
주치의는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면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 수속을 준비하라고 했다. 가급적 스스로의 힘으로 낳고 싶어 했지만, 이번에도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온통 꽁꽁 얼어 있던 12월 첫 주의 어느 날, 여행 가방에 잔뜩 욱여넣은 짐을 들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분만 대기 입원실은 6인실이었다. 얇은 커튼으로 나누어진 칸칸에서 저마다의 사연과 진통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역시 그 소리에 한 움큼을 보탰다. 유도분만제와 수액을 몸으로 보내는 튜브는 복잡하게 얽혀 두려움을 실어 날랐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금식 상태에서 24시간을 넘기자 산모도 나도 지쳤다. 산모는 애매하게 이어지는 진통에, 나는 간이침대에서의 쪽잠에 온 정신이 혼미했다. 서른 시간을 그렇게 보낸 뒤, 아내는 회진하는 의사에게 유도분만 포기를 선언했다. 의사는 지금까지 진통한 게 아까우니 48시간 정도 버텨보자고 했는데, 아내의 일갈에 제왕절개로 급 선회했다.
“아니, 제 인권을 생각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맥없이 누워있던 산모가 숨 쉴틈 없이 이렇게 쏘아붙인 게 어지간히 놀라웠나 보다. 의사는 그 후 아내를 마주칠 때마다 어설픈 인권 운동가를 비웃듯이 묘하게 웃으며 지나갔다.
탯줄을 자르러 분만실에 들어갈 수 없는 제왕절개다 보니, 탄생의 순간은 훅 하고 다가왔다. 수술실 앞을 40여분 지켰을까? ‘으아앙’하고 우는 아들이 의료진의 트롤리에 실려 나왔고,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한 뒤 신생아실로 휙 사라졌다. 얼떨떨하면서도 울컥하고, 참으로 어리둥절 한 순간이었다. 41주 1일 만의 일이다.
뒤이어 산모가 침대에 누운 채로 나왔다. 마취가 풀리면서 저체온증 환자처럼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침대의 작은 진동에도 크게 아파했고 혼미한 상태였지만, ‘아기는 다 괜찮은 거야?’라고 묻는 걸 보니 그녀도 강한 엄마의 반열에 들어섰구나 싶었다.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강렬한 순간들이 몇 분 사이에 스치듯 지나갔다.
제왕절개를 택한 대가는 컸다. 산모는 근 5~6일 동안 작은 움직임에도 아파했고, 남은 핏덩이들을 쏟아냈다. 새 회사에 출근하기 전 쉬는 동안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