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바이러스

종합병원의 무심함에 질려버렸다

by moonshot

아내가 약간의 거동이 가능할 때쯤 병원을 나와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눈 온 다음날이라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는 내내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를 안을 만큼 아내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신생아를 바운서에 넣어 이동했다.


제왕절개 입원 환자 정도는 가벼운 감기환자 정도로 취급하는 종합병원을 벗어나니 받는 대접이 달라졌다. 조리원 스탭들은 차량 도착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나와 함께 짐을 옮겨줬다. 예약된 점심식사는 정갈한 도기에 담겨 룸 서비스로 나왔다. 아내는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한참 동안 안내받고 왔다. 따뜻한 방에 놓인 큰 침대에 드러누우니 맥이 탁 풀렸다.


‘아, 비록 보름 동안이지만 좀 쉴 수 있는 건가?’


이틀이 지나면 나는 새 직장으로 출근해야 했지만, 산모와 아이의 수발을 며칠간이나마 믿을만한 곳에 맡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하루 만에 박살 났다. 로타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전말은 이렇다. 신생아와 덜 회복된 산모를 상대하는 시설의 특성상 입실 시점에 면밀한 상태 체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전염성 배앓이 질병인 로타바이러스가 발견된 것. 혹여 입실 후 이 증상이 나왔다는 시비에 걸릴까 봐 모든 과정은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뒀단다. 그렇다면 의심할 곳은 출산한 종합병원 단 한 곳. 잠복기가 48시간가량이라니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즉각 병원 신생아실에 전화했다.


거기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노라며 어떻게 책임질지 따지는 것은 둘째 문제였다. 로타는 전염성 질병이니까 신생아실에 함께 있던 다른 아기들은 괜찮은지 빨리 알아보는 게 급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병원의 답변은 군색했다. 신생아실 내에 로타바이러스 증상을 보이는 아이는 없고, 우리 아이도 머무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로타는 오 진단율이 높은 편이니 조리원에서 여러 번 거듭 검사를 해 보라는 권고만 내놨다.

허탈했다. 곧이어 참았던 화가 치솟았다. 안절부절못하기라도 했으면 그러려니 넘어갔을 텐데, 책임 회피에 몰입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에 이 사실을 알려 제대로 따져보고 싶었지만 아내 생각은 달랐다. 닦달해서 애가 낫는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이런저런 조사에 응하느라 더 피곤해지기만 할 거라는 염려에서다. 아내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음성 반응이 뜨기까지 6일간의 모자 동실이 시작됐다. 제왕절개 후유증으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아내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그렇게 버텼다.


‘일주일만 더 쉬다가 출근할 걸’.


하필 그 무렵 출근을 재개하고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퇴근 후 밤마다 조리원에서 거들고 새벽이면 집으로 가 옷 갈아입고 출근하는 나날이었다.


나와 아내가 떡실신할 때쯤 아무런 특이 증상 없는 로타바이러스 양성 반응은 종지부를 찍었고, 남들은 일생에 가장 편하게 누린다는 조리원 일정의 절반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영아 집단 사망사건이 일어난 시기였다. 우리 아이는 나아졌지만 ‘다행이야, 고마워’라고 할 수 조차 없었다.


종합병원의 무심함에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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