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기쁨, 역할을 부여받기 시작했다는 걱정의 교차

by moonshot

출산 1개월 정도 전부터 아기 이름 짓기를 고민했다. 녀석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쯤이면 지금보다 국경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란 생각에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도 무난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부르기에 너무 튀는 이름도 싫었다. 유년시절에 이름 때문에 곤란을 겪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우선 영미권 남자아기 이름부터 펼쳐놓았다. 그대로 쓰거나 조금 응용했을 때 한국인이 두 글자 이름으로 쓸 만한 것들은 널리 선점된 것 같았다. 해외 문물을 접하기 쉬워서인지 국민 일반의 사고방식이 좀 더 세계를 향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전형적인 한국형 이름을 지을 수는 없었다. 남미, 스페인, 아일랜드 등지에서 쓰이는 남자 이름을 들춰봤다. 돌고 돌아 프랑스 정도에서 여정을 멈출 수 있었다. 두 음절을 지어놓고 보니 이놈은 불어가 통용되는 유럽이나 캐나다, 아프리카 등지를 누비며 보람찬 삶을 살 것만 같은 뇌내 망상에 휩싸였다. 여분으로 불어권 밖에서도 두 개 정도의 이름을 챙겨놨다.


의미 있는 한자도 붙여주고 싶었다. 옥편을 뒤져가며 불어에서 차음 한 두 음절에 착 붙는 한자 이름을 조합했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 후보 이름 세 개에 한자를 조합해 넣는 것은 꽤 난도가 높은 일이었다. 학교 다닐 적에 한문 수업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거니와, 이름자로 쓸 수 없는 한자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께 후보군 이름을 보여드렸다. 무엇이든 좋다고 하신 분이 있는 반면, 특정 이름을 콕 집어 좋다고 하신 경우도 있었다. 우리를 포함해 여섯 명의 뜻이 어느 정도 합일점을 찾으리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우리 맘에 제일 드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게 빠를 것 같았다.


막상 정하고 보니 지은 이름이 아이의 사주랑 잘 맞는지 궁금했다. 나나 아내나 그런 것에 돈 써 본 경험이 전무했지만 이번엔 얘기가 달랐다. 돈을 좀 더 쓰더라도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사 주고 싶은 마음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 아내가 동네 인근에서 꽤 알려졌다는 성명 철학원에 들렀다. 고심해서 지어야 하니 하루 있다 다시 들르라고 했단다. 우리가 지은 이름과 발음은 같지만 한자 하나가 달라진 이름과 후보군에 없던 이름까지 도합 두 가지를 내놓고 20만 원을 받더란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대부분 현금으로 비슷한 금액을 지불하는데 세금 신고를 성실히 할까 궁금했단다. 묻고 싶지만 부정 탈까 봐 빳빳한 5만 원권 4장과 으로 두 가지 이름의 뜻풀이가 담긴 종이 두 장을 맞바꿔 왔다고 했다.

한 가지 이름을 주민센터에 등록했다. 뒷자리가 3으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았다. 통장도 하나 열었다. 어엿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기쁨과 사회로부터 역할을 부여받기 시작했다는 걱정이 교차했다. 하루에 현찰로만 수백씩 '땡기는' 철학관 아저씨의 이름 팔자도 문득 궁금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귀, 가족의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