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관심 아닙니다.
개개인이 어떤 인간사와 마음속 아픔을 갖고 있는지 온전히 알 수 없기에 사적인 질문이나 참견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친한 친구 혹은 가족일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사적 영역에 대한 질문은 크게 터부시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00이는 공부 잘 하니?”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으셨을 것이다. “00이는 잘 자라니?”혹은 “00이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아이니?”라는 질문이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지하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기댈 곳이라곤 고도화된 노동력뿐이었을 테니 이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민감 영역을 넘나드는 사적 질문 혹은 조언(오지랖이라고 해두자)이 공부 외 영역에도 넘쳐나는 걸 보면 자원 탓 보다 배려의 상실을 꼬집어 볼 만 하겠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좋은 일자리는 부족한 가운데 만혼도 흔한 풍경이 됐다. 그러니 자녀 계획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사정도, 혹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가정도 흔해졌다. 이건 인상 비평 차원의 문제 정의가 아니다. 이미 수두룩한 통계로 뒷받침되고, 국가 정책 차원에서도 과제로 삼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걱정인지 간섭인지, 상처에 소금 한번 뿌리겠다는 심산인지 알 수 없는 오지랖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남자 나이 서른다섯, 여자 나이 서른 즈음이면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해라”라는 입방정에 약한 충격을 입는다.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일가친척에서부터 업무상 만난 외부인까지 이런 오지랖을 떨어대면 강철 멘탈도 조금씩 금이 가게 마련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으고 빚까지 져서 결혼식을 치르면 “부지런히 모아서 내 집 마련해야지”라는 훅이 안면을 강타한다. ‘이 보세요, LTV가 예전과 다르고요, 집값이 워낙 비싸서 제 소득으로는 DTI 조건을 통과할 수도 없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지만, 말해봐야 계약금 한 푼 보태줄 리 만무하니 참기로 한다.
“아니,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 애를 안 낳아?”라는 미칠듯한 저돌성은 더더욱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마치 우리 부부의 정자와 난소, 자궁을 몽땅 임대한 듯한 파워 당당함에 얼이 빠져 있노라면 확인 사살까지 덤으로 들어온다. “하나는 외로우니 둘을 낳아 길러야 한다”라고. 거기다가 “너희들은 이미 노산”입네 “회사에서 한 푼이라도 자녀 관련 복지를 누리려면 서둘러라”와 같은 딱총 세례까지 보태지면 정신은 너덜너덜해 지기 마련이다.
자연 임신 후 계류유산, 지난한 임신 시도와 인공 수정, 시험관 시술에 이르기까지 우리 둘의 신체는 의학적으로 정상 판정만 받아왔다. 문제를 특정할 수 없기에 더 괴로웠던 수년의 시간이었던 만큼, 오지라퍼들의 날름대는 혀를 뽑아버리고픈 충동에 휩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의 집 자녀 공부가 걱정되거든 사교육비를 보태줘라. 누군가의 비혼 상태가 염려되거든 소개팅에서부터 신혼여행까지 악착같이 책임져줘라. 집 장만이 걱정되거든 최초 불입금을 납입한 비과세 저축 통장이나 선물해줘라. 재개발 유력 지역 원주민 딱지도 유효하겠다. 자녀 출산이 염려되거든 난임 전문 클리닉 시술비를 내줘라. 하나만 낳아 외로울 것이 걱정되면 당신의 자녀에게 양육을 맡겨라. 실질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 없다면 오지랖을 참아보자. 상대방은 마음의 안식을 얻을 것이요, 당신은 혀뿌리를 뽑힐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