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가정의 남편을 위한 조언

"당신보다 아내가 열곱절 이상 어려움을 뒤집어쓴다"

by moonshot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전 고민을 거듭했다. 조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곤란을 해결한 자의 배부른 회고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서였다. 염려를 뒤로하고 ‘그래, 써보자’라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몇 년 전의 내게 이런 정보가 없었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갈등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롯해 주변을 살펴보면 아이를 가지는데 어려움을 겪다는 부부들은 먼저 심리적 장벽에 부딪친다. 특히 둘 모두가 의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으면 ‘그럼 왜 안 되는 건데?’라는 생각을 놓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허공에 주먹을 뻗는 형국이다.


게다가 아직은 한국사회 전반에 ‘여자 탓’으로 돌리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때 남편의 스트레스 지수가 1이라면 부인은 1.5 혹은 2 정도의 괴로움을 겪게 된다. ‘스텝이 꼬인다’는 말처럼 적당한 표현이 또 있을까? 마음이 무거우니 닿을 듯하면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다. 덩달아 조금씩 다툼도 생겨난다.


다음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하게 된다. 시술만 놓고 보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준비 과정에서 아내들은 육체적으로 큰 무리를 하게 된다. 바로 과배란 유도 주사 때문이다. 한 달에 하나 정도 생산되던 난자를 일시에 여러 개 쏟아지게 하는 주사제는 육체를 교란시킨다.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구토나 어지럼증, 복통, 두통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당연히도 이 과정에서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에 심한 화를 내기도 한다. 일정 수준 각오는 했지만 예상 밖의 예민함에 나는 버럭 하며 맞받아 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이 시술 또한 성공률이 20~30% 수준이라 하니 실패 이후 심리적 좌절감은 덤이다. 우리는 두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마지막 순서는 시험관 시술이다. 말 그대로 정자와 난자를 체외에서 수정시켜 일정 기간 배양 후 모체에 이식하는 방법이다. 인공수정 때처럼 난자 채취를 위한 과배란 유도 주사는 당연히 따라붙는다. 여기에 더해 난자를 체외로 꺼내는 채취 과정이 큰 부담이다. 간단한 수술 이상으로 마취를 병행하기도 하고 끝나면 일정 시간 안정을 취한 후 귀가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반나절 이상의 휴가를 써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후 배양된 배아를 이식하기 위해 또 한 번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 이식 후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가의 시술이라 경제적 부담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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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혜택이 좀 늘어났다지만,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맞벌이 부부라면 그마저도 ‘찔끔’이다. 10억 원이 넘는 자택을 보유하고 부모로부터 매달 수백만 원의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백수 부부가 있다고 치자. 모든 지원 혜택을 최고 수준으로 받을 수 있다. 세금 징수 시스템에 남겨진 기록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반대로 월세 사는 대기업 맞벌이 부부는 최저 수준의 지원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참, '찔끔'이나마 지원을 받으려면 관할 보건소에 시술 때마다 들러 서류 증빙도 해야 한다. 이 꼴 저 꼴 보고 속 터져봐야 내 손해니 알아도 모른 채 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프로세스를 거치기에 앞서 한 선배가 내게 줬던 조언이 정답이었다. “좌고우면 하지 말고 시험관 시술 잘 하는 병원으로 직행하라”. 시간과 노력, 비례해서 증가하는 스트레스 등을 감안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더 부인을 배려하고 아껴주라고 조언하고 싶다. 남자가 겪는 어려움의 열곱절 이상을 뒤집어쓴다. 모든 과정을 이겨낸 아내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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