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내가 못 먹는 떡은 얼마나 더 많을까’
지은 지 20년 된 아파트에 전세 살며 아들을 만났다. 더 좁은 집에서 더 많은 식구가 사는 가정도 많은 걸 알기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아내가 출퇴근할 때 도어 투 도어로 30분밖에 안 걸린다는 사실은 큰 매력이었다. 아기 용품이 쌓여갔지만 그냥 그렇게 견디며 계약 만기까지 살고 싶었다. 하지만 100일도 안된 아이를 두고 복직을 해야 하는 아내를 배려하자면 복비를 물더라도 이사를 결단해야 했다. 장모님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어서인데, 이사를 하지 않으면 통근에만 3시간을 쓰셔야 했다.
엄동설한에 처제네 동네를 돌았다. 장모님 손에 자라 이제 여섯 살이 된 조카도 가끔 보실 겸 통근 시간도 90분 내로 줄여 보자는 취지에서다. 새 학기를 앞둔 시점 이어서일까? 8.2 대책에서 경고한 ‘4월 기점’을 앞둬서일까? 이유를 특정할 수 없지만 성동구 행당동의 아파트 시세는 몇 달간 폭등 상태였다. 게다가 전세물량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몇몇 공인중개사에서 그 배경을 들었다. 강 건너 압구정동에서 유한마담들이 돈보따리를 들고 아파트 왕십리 일대 아파트를 쓸어 담는다는 점. 국토부의 단속을 맞을까 봐 공인중개사들이 담합해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는 점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평형을 조금 넓혀 새로 살 집을 찾았다. 퇴근길, 영하 15도의 냉기를 뚫고 부동산을 찾았다. 매도자 인적사항을 보니 나보다 세 살 어린 집주인은 송파구 일대에서 손꼽히는 비싼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자기 돈 1억 원을 들여 전세를 끼고 이 집을 매수했다는 그는 우리가 입주하는 날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팔기로 했단다. 우선 그와 계약을 하고 입주 날 새 계약서를 쓰면 된단다. 등기부등본에 1년 4개월 간 흔적을 남긴 대가로 그는 1억 몇천만 원의 차액을 남기게 된다. 어지간한 직장인의 3년 치 연봉이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갭 투자구나. 이런 것도 안 한 난 참 멍청하게 살았구나’.
허탈했다. 물론 불확실성과 몇 가지 리스크를 각오한 그가 베팅의 대가로 가져가는 이익이지만 말이다. 계약서 날인 후 그와 부동산 직원이 나눈 대화를 들으니 허탈을 넘어 좌절감까지 느껴졌다.
다른 매물 투자할 만한 곳 브리핑 좀 해주세요”
삶을 이어가야 할 거점 이기에 내겐 너무 무거운 선택지 중 하나인 아파트. 그게 누군가에겐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하나쯤 더 담는 껌 같다는 현실이 주는 괴리감은 상당했다. 양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건 없지만 결혼 후 7년 동안 둘이서 착실히 모으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 순간의 난 바보 천치에 다름 아니었다.
그 시장을 아는 사람들끼리 뜻을 모으면 아파트값 ‘장난질’은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일정액 이상으로만 매물을 내놓도록 담합하고, 갭 투자자는 먹고 튀고, 부동산 중개인은 좀 더 높은 수수료를 가져가는 그들만의 리그. 폭탄은 돌고 돌며 눈덩이처럼 커지고, 영문 모르는 실수요자(혹은 호구)는 아무리 착실히 모아도 지대를 따라잡을 수 없는 원리가 이런 거였구나. 암호화폐 ‘잡 코인’ 다단계 판에서 설계자와 초기 진입자들만 먹고 튀는 그림도 겹쳐 보였다. 그간 가급적 남의 돈 쓰지 않는 것을 원칙 삼아 왔지만, 눈 앞에서 라이브로 ‘주택 능욕’을 당하고 보니 약이 올랐다. 다음번엔 빚을 좀 내더라도 집을 사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하면 부자아빠 반열에 오르지 못한 나는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는 걸까? 대다수 중년층들이 주택을 소유함과 동시에 급속도로 우경화된다더니, 딱 그 수순이나 뒤따르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못 먹는 떡은 얼마나 더 많을까’, 지레 걱정까지 하는 얕은 속까지 느껴지니 비린내가 확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