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리빙 포인트'
화투 놀이의 하나인 고스톱에서, 먼저 점수를 얻어 고를 부른 사람이 이후 다른 사람의 득점으로 인해 혼자서 나머지 사람의 몫까지 물도록 하는 법칙
‘독박’의 사전적 정의다. 언제부턴가 육아에도 이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도박판에서 크게 잃는 것처럼 육아를 혼자 하는 것 역시 큰 좌절감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현상을 적확하게 투영할수록 신조어는 빠르게 확산된다. 독박 육아는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아는 표현이 됐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독박 육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여성들에게는 아직 꽤 흔한 경험이기도 하다. 과거보다 나아졌다지만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공고한 편이고, 수유 등 신체적 특성에 기인해 본의 아니게 집에 발이 묶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의 고충은 아빠들에게 닿지 못하고 메아리가 되기 일쑤다.
지난 3월 초, 그러니까 아내가 3개월간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한 다음 주였다. 장인께서 3일이 걸리는 질환 검진을 받게 됐다. 입원 상태에서 진행되는 검사라 외손주를 봐주시던 장모님께서 간병인으로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는 휴가를 낼 수도 없는 형편. 미숙하지만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흘간 연차휴가를 내고 독박 육아 체험을 시작했다.
때마다 뭔가 느긋하게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사한 일이었다. 품에서 내려놓으면 칭얼대게끔 디폴트 세팅이 된 아들놈은 5분간의 식사 시간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왼팔로 애를 안아 몸에서 멀찌감치 떨어트리고 오른손으로 국그릇에 말아놓은 밥을 욱여넣거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화장실을 쓰거나 샤워를 하는 건 더 곤란했다. 중간에 끊고(?) 우는 애를 달랠 수 없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못 감은 머리는 떡졌고 티셔츠 한 켠 에는 게워 낸 분유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 상태로 급히 슈퍼마켓에 갈 일이 있었는데, 계산대에서 사람을 마주하게 되니 자존감이 확 떨어졌다. 아기 엄마들이 잘 꾸민 커리어우먼 친구를 만나면 한없이 위축됨을 느낀다더니, 공감이 됐다.
늙은 아비의 몸뚱이도 문제였다. 마흔 줄에 첫 애를 낳다 보니 추간판과 기립근에 금세 피로가 쌓였다. 백일 남짓 된 작은 아기지만, 꿈틀대고 파닥대니 놓치지 않으려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자연히 목과 허리, 손목, 무릎에 충격이 쌓여갔다. 앉았다 설 때면 영감님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3일을 보내고 주말이 왔다. 공동육아 전선 하에 이틀을 더 보낸 뒤 회사에 출근하니 굉장한 해방감이 들었다. 원할 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20분 동안 밥을 먹어도 되는 일상이라니! 기쁨도 잠시. 일과시간 동안 홀로 아이를 봐주시는 장모님을 생각하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몇 가지 ‘리빙 포인트’를 얻었다. 새벽에 아이가 울때 “헛차~”라고 기합을 넣으며 텀블링을 해 일어나면 좋다. 꽤 열심히, 그리고 사랑으로 공동 육아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젖병 설거지는 장모님이 오시는 시간대에 맞춰서 하면 좋다. 날로 먹는 놈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써놓고 보니 짜치기 그지없지만, 함께 하되 분위기를 띄우는 건 대체로 아빠 몫이더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