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스스로 발톱을 깎을 수 있게 됐다
제왕절개 후 한동안 아내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맘 놓고 푹 쉬어야 할 산후 조리원에서 초반 6일간 모자 동실을 한 여파도 컸다. 게다가 출산 시점이 한 겨울이다 보니 몸에 바람이라도 들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생명체를 열 달 간 품고 있다가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난일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지만, 평소 수월하던 일에 좌절감을 느끼는 장면들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흔한 일상인 화장실 뒤처리를 생각해보자. 팔 길이는 그대로인데 몸통 둘레는 엄청 늘어나 있다. 당연히 목표 지점에 티슈를 얹은 손을 갖다 대기조차 힘들다. 그 좌절감에서 촉발된 짜증과 화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열흘 남짓마다 한 번씩 다가오는 손발톱 깎기는 몸 앞쪽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문제다. 임신 후반부부터 발톱 깎기는 간단찮은 일이었다. 어지간하면 내가 손을 좀 봐 주려 했지만, 아내의 발톱은 아주 작은 편이어서 손대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결코 핑계가 아닌 것이, 페디큐어라도 받으러 가는 날이면 네일 샵 직원이 꼭 한 마디씩 얹었던 것을 기억한다.
언니, 너무 정밀한 시공이라서 추가금 받아야 할 판이에요"
결국 내가 손대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 네일 샵으로 보냈었다. 산후에도 아기와 양수가 빠진 만큼 복부가 정비례 해 줄진 않는다. 게다가 관절 곳곳이 예전 같지 않은지 작은 움직임에도 끙끙대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출산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엄마는 스스로 발톱을 깎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모자 동체에서 각자가 돼 가는 시간을 열어가는 듯했다.
아들 역시 탯줄로부터 분리돼 소소하지만 위대한 자기만의 길을 열어가고 있었다. 하룻밤에도 대 여섯 번을 먹고 싸느라 울어대던 녀석이었다. 함께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다 보니 아내와 내 낮 시간은 너덜너덜했다. 분유 먹는 뱃구레가 커지면서 거짓말처럼 '100일의 기적'이라는 게 찾아왔다.
먹는 양이 늘어나니 자연히 자는 시간도 조금씩 길어졌다. 자기 손을 뻗어 물체와의 거리를 재고,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눈동자와 ‘영점’을 맞추는 행동은 독립적 객체로서의 상징을 내세우는 시위 같았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먹이 활동을 위해 스스로 훈련하는 아기 동물의 모습을 내 눈 앞에서 보는 감동이랄까. 어딘지 비현실적이면서도 뭉클함이 훅 들어왔다.
많은 부모들이 감동 포인트로 삼는다는 ‘뒤집기’는 출근해 있는 동안 장모님께서 촬영해 주셨다. 제법 힘이 붙었다지만 아직은 둥글고 짤막하기만 한 몸뚱어리로 ‘뒹구르르’ 하는 모습에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내 새끼’지만 마냥 잘 나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건 아니더라.
칭얼대면서 추임새 삼아 “음맘마맘마”, “어푸아~~~”따위의 소리를 내 줄 때면 통하지 않는 대화를 시도하며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각자가 돼 가는 시간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