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사진에 관한 이야기

잦은 포스팅 욕망을 억제하고 ‘기복 신앙’을 실천하다

by moonshot

총각 시절, 혹은 아이가 없던 신혼 시절엔 자녀 사진 일색인 지인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이라면 인스타그램에 ‘#애스타그램’같은 해시태그로 장식된 포스팅들 말이다. 그런 계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니, 아이 말고는 일상이나 본인의 사색 같은 건 전혀 없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애를 키워보니 거짓말 좀 보태서 정말 그렇더라. 더군다나 독박 육아를 하는 전업 주부라면 온 일상을 아이에게 바칠 것이 분명하다. ‘내 생각’ 같은 걸 하고 기록할 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아기 썸네일이 모여 수십 개의 블록 단위를 형성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정한다. 언어로 상호작용 할 수는 없지만 몸으로 부대끼며 일궈내는 아이와의 유대감은 각별하다. 게다가 마음먹고 카메라를 세팅해야 했던 옛날(이라고 해 봤자 십 수년 전)에 비해 이미지 기록은 너무 쉬워졌다. 아이가 재롱이라도 부리는 찰나라면 망설임 없이 몇 컷이고 찍는다. 아기가 없던 시절에 스마트폰에 담던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의 멋진 상차림은 저장공간 저 멀리 떠밀려 올라간다. 귀엽기 그지없는 내 아이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비슷한 해시태그를 단 다른 집의 아기 엄마와 교류할 겸 해서, 그러다 보면 내 아이덴티티를 기록하는 공간에 아이의 이미지만 잔뜩 들어 차는 거다.


그런 계정의 피드(feed)가 지겨워서 팔로우를 끊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가급적 애 사진을 내 소셜미디어에 올리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은 딱히 지인 기반으로 운영하지 않는 터라, 심심찮게 업로드했음을 고백한다). 아무튼 사진을 매개로 애 얘기를 좀 하고 싶지만, 보는 입장에선 딱히 흥미로운 떡밥이 아님을 알기에 자제하다 보니 약간의 욕구불만 같은 게 생겼다. 먼저 애 소식을 물어봐 주거나 사진 좀 보여달라는 사람을 지나치게 반가워하게 되더라.


녀석의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며 주 단위로 새로운 사진을 보여달라는 회사 동료가 고마웠고, 알고 지낸 시간이 짧지만 사진만 보고도 이맘때 이런 게 필요할 거라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지인들에게 감동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라고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새로 생겨버렸다.


아이의 사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꽤 가까운 사이구나.


내 방식을 찾아야 했다. 기록은 하되 남들이 원치 않는 노출은 최소화하는 방향성이 필요했다. DSLR에 표준 줌 렌즈를 물려 집안 가장 손 잘 닿는 곳에 놓아두었다. 한주에 두어 번 인상적인 장면들을 기록했다. 50일에 한번 정도 백업을 하니 아이가 성장하는 흐름이 읽혔다. 모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때마다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채워 넣을 일 없으니 유유자적하는 맛도 있었다.

100일입네 하며 사진 스튜디오에 애를 데려가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목욕 후 배시시 웃는 사진 한 장이 훨씬 값어치 있게 다가왔다. 그것 만으로도 몇 십만 원은 굳혔다 생각했다. 가족 셋 각자의 이름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기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 백 퍼센트 순수한 마음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하면 내 새끼가 복 받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출산 당시에도 딱 그 마음으로 기부를 했는데, 약간의 ‘기복 신앙’이면 어떤가. 돌 때도 그렇게 할 거고, 기념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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