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와 혁신성은 우아한형제들의 자양분
배민 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삐뚤빼뚤한 고유의 폰트? 민트색과 흰색의 조합? 키치(kitsch)한 광고 콘셉트? 터치 몇 번이면 짜잔 나타나는 맛있는 배달음식 중개 창구?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배민 다움’의 정의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을 필두로 유관 비즈니스 영역으로 파고들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넘버원 배달앱이 됐다. 그중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종과 횡으로 빛나는 메시지를 창출해 내고 적확하게 딜리버리 한 점은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업계 지인으로 알게 된 우아한형제들 류진 홍보이사님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좋은 공간 디자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사무공간을 둘러볼 찬스였기에 회사가 위치한 몽촌토성역 으로 향했다. 맨 꼭대기 리셉션 공간에서부터 사무공간들 까지, 18층 높이의 건물 대부분을 임차해 쓰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배민이 공간을 통해 구성원과 방문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보고 느끼는 계기가 됐다.
배민의 사업 첫 해, 대한민국에서 마케팅이나 홍보, 디자인 등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했다. 굵은 매직으로 눌러쓴 듯한 폰트로 잡지 한 면에 천연덕스럽게 자리 잡은 광고 시안 때문이다.
낚시 잡지에 ‘슬플 땐 우럭’이라는 카피를 얹는다든지, 공연 매거진에 ‘오리지널 내한 치킨’ 같은 최적화된 문구를 실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이, 이 잡지의 전문 콘텐츠를 탐닉하는 독자 양반. 밥은 먹고 읽으시지?’라고 능청스러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당시 트위터에는 이 같은 광고 시안을 자발적으로 퍼 나르는 팬덤이 생겼고, 언론도 독특한 마케팅 사례로 연일 대서특필 했다.
이 같은 배민만의 잡지 광고 방식을 내부에서는 ‘잡지 테러’라고 칭한다. 카피라이팅을 전담하는 직원은 한 명도 두지 않고, 대신 잡지 테러와 같은 활동에 구성원을 상시적으로 적극 참여시켜 종사자들 스스로가 '어떤 게 배민다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 스스로 답을 도출하게끔 유도한 결과다. 잡지 카피는 구성원 공모를 통해 수시로 선정하며, 뽑힌 시안의 주인에게는 소정의 리워드를 줘 긍지를 심어준다.
사무공간 곳곳을 관통하는 코드들도 잡지 테러의 그것과 궤를 같이 했다. 위트 있게 말하되 선을 넘어 불쾌하진 않도록, 강조하되 압박하지 않는 방식이다. 넛지(nudge)라고 하기엔 직관적이고, 볼드(Bold)하다 하기엔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개별 매거진에 최적화시킨 광고 시안들처럼 사무공간 곳곳의 메시지들도 '누가 수신자인가?'를 고민해 위트 있게 풀어냈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이다. 우아한형제들은 공간 곳곳에 고유의 폰트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혁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만 돌리면 보이는 다양한 메시지들에 갇혀있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다. 풀어내는 방식이 부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고유의 폰트가 친근하다. 한나체·주아체·도현체·연성체·기랑해랑체 등 5종의 공식 폰트들은 오래된 것이나 흔한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자연히 거부감이 덜하다. 글을 적는 방식은 담백하다. 미사여구가 없고 주술 관계가 명확하다. 약간 촌스러운 행색이지만 깨끗하게 세탁해 빳빳하게 다림질 한 옷을 입은 청년이 또박또박 말하는 느낌이랄까? 모든 층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스포츠에서 특이한 시도라서 처음엔 비웃음을 유발했지만, 그 혁신성으로 말미암아 이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사례를 곳곳에 큰 이미지로 각인해 두었다. 오며 가며 이것들을 본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아요, 남들이 좀 웃으면 어때요. 곧 우리가 하는 방식이 표준이 될 텐데'라고 생각할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디팩토 스탠다드(de facto standard)'가 어디 있겠는가.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지.
모여서 일하는 공간을 통해 조직이 지향점을 끊임 없이 되새김질 하게끔 하는 작업. 이거, 생각보다 무진장 어려운 일임을 어떤 인사 관리 전문가라도 인정할 것이다.
로비와 면접 대기 공간, 리셉션 등 외부인이 배민을 처음 접하는 곳에는 집요하리만치 '먹을 것'이라는 업의 본질을 테마로 한 이야기거리를 비치해 두었다.
액자 속 빼곡한 글자들 사이로 무엇이 보이는가? 투쟁심이 내재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안에서 많은 음식 이름을 빠르게 찾아내고 싶어질 것이다.
면접 공간이 있는 층에는 이처럼 회사의 주요 3개 사업 영역인 배달의 민족, 배민 찬, 배민 라이더스의 이름을 소재로 한 유화가 걸려 있다. 재미있는 점은,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브랜드명이 바뀐 경우 덧댄 그림을 그냥 턱 걸쳐 놓은 부분이다. 예사 기업이었다면 액자를 덜어 내고 새로운 것을 걸었겠지만, 잘 일궈내지 못한 역사도 그것대로 소중히 보관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솔직담백한 기업문화의 단면일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의 구성원들은 ‘무엇이 배민 다운 것인가’를 집요하게 고민하고, 고민 끝에 도출한 메시지를 고객이 다니는 길목 곳곳에 배치한다. 우연히 그것을 발견한 고객은 피식 웃으며 주위로 퍼 나르고 싶은 자극을 받는다. 사무 공간을 통해 이야기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키치스럽지만 유쾌하고(전혀 불쾌하지 않고) 재치 넘치는 그 어떤 것에 관한 ‘느낌의 덩어리’는 고스란히 브랜드 자산이 됐다. 이 자산은 고객의 상상력으로 창출된 바 확장성이 크고 어지간해서는 뒤틀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기업들은 흔히 ‘우리가 브랜드 저널리즘을 하자!’ 혹은 ‘언론에 이런 모습으로 비춰지게 하자!’라는 의도성을 갖고 메시지 창출에 나선다. 하지만 배민은 스스로를 관찰하고 업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 소재를 발굴해 냈다. ’00 답다’는 느낌을 주는 것을 궁극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건강한 브랜드 자산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부가 됐고 생각할 여지가 많았던 방문이었다. '배민 다움'을 보여 주신 류진 실장님께 지면을 빌어 사의를 표한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