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s in Sanghai
출장차 상하이를 다녀왔다. 홍콩을 제외한 중국은 본토는 처음이었고, 배경 지식은 제로에 가까웠다. 상하이는 국제 금융 도시로 중국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이며,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가 꾸려진 곳이라는 정도.
업무 외 시간에 몇몇 곳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감흥이 있었다. 남들이 쓴 글이나 언론 기사로 접하는 것보다 강렬했다. 모바일 시대에 탄생한 로컬 서비스들은 엄청난 내수시장에서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고, 글로벌 브랜드들은 인구 2천6백만의 도시에서 시원시원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 최초 ‘NIKE House of Innovation’
(난 Byton 매장을 꼽고 싶지만)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은 상하이 최고의 브랜드 경험은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 난징동루에 자리 잡고 있다. 스포츠웨어를 넘어 도전과 성취의 모든 과정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 세계 최초의 나이키 혁신 매장(NIKE House of Innovation)이자 뉴욕에 이어 둘째 크기의 매장이란다. 중국 한정판 제품부터 커스터마이징 품목까지, 나이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다. 뿐만 아니라 지하 1층에서부터 지상 4층까지 우뚝 세워둔 미디어 파사드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단순 디스플레이가 아닌 참여형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극대화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제품 가격대는 한국 매장과 거의 같은 수준. 현지인들의 보통 소득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프리미엄 카테고리에 속할 테다.
세계 최대라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본고장 시애틀의 리저브 로스터리 대비 두 배 크기라고 한다.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 텀블러나 머그컵 등에 국한된 굿즈만 봐오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티셔츠에서부터 자전거까지. 카페와 공간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관한 제품들이 빼곡하다. 매장 안쪽에 위치한 로스터리는 컨베이어를 통해 바리스타들이 있는 곳곳으로 원두를 실어 나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의 커피 버전이랄까. 압도적인 스케일과 짜임새가 오감을 자극한다. 차(茶) 문화가 강한 중국답게 다기류도 매대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허마셴셩(盒马鲜生)
보안 요원들이 촬영을 엄격하게 통제해 아쉬웠던 곳. 알리바바의 마윈이 주도해 유명한 곳. 간혹 무인 판매점 아마존 고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구매와 결제 경험의 혁신을 추구하는 그곳과는 콘셉트가 다르다. 수산물의 구성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 외엔 매장의 구성이나 매대 운영 등은 한국의 흔한 대형마트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곳의 혁신성은 천장에 설치된 장바구니 이동 레일로부터 시작된다. 고객이 선택한 제품이 다회용 폴리백에 담겨 천장 레일을 통해 배송요원들에게 전달되어 인근 3km 내 30분 배송이 원칙이란다. 어린이용 카트가 꽤 잘 활용되고 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매장 내 즉석조리 코너에서 인원 대비 상당한 양의 요리를 펼쳐놓고 먹는 중국인 특유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대륙의 모빌리티, 거침없이 나아가는 게 부럽다
한국에서 아직 보지 못한 테슬라 모델 3가 전시된 매장에 들러보았다. 생각보다 허술한 마감과 빈약하리만치 단출한 인테리어를 보며 적지 않게 실망했다. 2016년도에 예약금 걸고 3년을 기다린 사람들이 인도받으면 차량 곳곳을 만지며 쓴웃음을 지으리라.
테슬라 바로 옆에 첸투(Qiantu) 매장이 있길래 조금은 비웃는 마음으로 입장했다. (테슬라의 T로고를 연상시키는 잠자리 형태의 앰블럼 때문). 외관과 내장재를 중심으로 한 ‘겉보기’ 비교일지언정, 디테일은 테슬라의 모델 S보다 훨씬 좋았다. 유사한 가격대라면 당할 수 없는 가성비를 보여주리라 예상한다. 내연기관 자동차라면 수많은 부품 간의 하모니에 관한 노하우가 부족한 중국산을 신뢰하기 힘들 테지만, 구조가 단순한 전기차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바이톤(Byton) 매장도 가보았다. 올 하반기에 레벨 3 자율주행이 가능한 M-Byte모델이 양산된단다. 올여름에 중국에 다시 방문하면 길에서 이 녀석을 흔히 볼 수 있을 거란다. 계약 할리 없는 외국인에게 열심히 설명해준 직원 앨런은 테슬라에 근무하다가 이직했다고 한다. 2021년 양산 예정인 K-Byte모델은 외관 곳곳에 큼직한 라이다가 부착돼 있었는데, 레벨 4 자율주행이 가능하다고. 차량들의 생김새는 첸투와 마찬가지로 익숙한 유러피안 럭셔리 카들의 모습을 조금씩 빼닮았지만, 내장재의 마감과 전체적인 고급감은 대단한 수준. 중국 전기차, 우습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중국판 우버라고 불리는 디디추싱(滴滴出行). 세그먼트가 다양하고 호출 승낙 시까지 대기시간이 짧아 체류하는 내내 무척 편하게 사용했다. (현지 생산품인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폭스바겐이 주류인 일반 택시가 디디추싱 대비 경쟁우위가 하나라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밤 11시경 기본요금 수준의 단거리 이동을 하려고 길에서 손 들어 택시를 잡으니 미터를 끄고 3배 수준의 요금을 요구했었다. 디디추싱 활성화 상태였다면 어림없었을 일이었겠지만, 도착 첫날 로밍 활성화를 해놓지 않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ROEWE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용하는 운전자가 많았는데, 그리 정숙하진 않았지만 딱히 나쁘지도 않은 승차감이었다. 한국에도 가성비를 무기로 중국산 소형 상용차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하이브리드카도 그럴만할 것 같았다. 양산차나 친환경 차, 모빌리티 O2O 혁신, 한국이 이제 몇 걸음 뒤쳐졌다.
아직은 부족한 디테일, 그리고 창의성
만듦새는 좋아 보이지만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전기차 디자인. 감시와 통제 수준이 높은 나라다 보니 창의성이 필요한 부분에선 약점을 보이고, 저작권 개념이 희박해 외국 것을 쉽게 베낀다는 얘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포인트였다. 무치(MOOCH)라는 만년필&펜 매장도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LAMI와 몽블랑, 파커의 느낌을 버무려 놓은 듯한 인테리어와 제품 구성. 고급져 보이지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 그리고 고화질 디스플레이에서 돌아가는 픽셀 깨진 스틸 이미지는 결코 하이엔드로 올라설 수 없는 내부의 장벽을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후 거리 곳곳에서 아무 사진이나 퍼다가 작업해 픽셀이 깨졌으리라 짐작되는 광고 인쇄물들이 족족 눈에 띄었다.
핫플레이스라는 조계지는 초창기 가로수길을 큼직하게 키워놓은 것 같았다. 여유로웠고 힙했다. 다만 꽤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편집샵의 컬렉션이 신세계 분더샵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모바이크를 뒤덮은 광고 스티커에서는 시민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네 후미진 공공 화장실 한편에 붙은 ‘신장 삽니다’류의 스티커가 자전거 프레임을 빼곡히 덮고 있다. 따릉이 같은 공공자전거는 최소한 그런 문제에선 자유롭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더드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들
퓨전 음식을 내놓는 오하 이터리(Oha eatery), 금주법 시대를 콘셉트로 한 오초 스피크 로우 바(Speak Low Bar)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해외 문물에 밝은 젊은 인구들의 절대적 숫자가 많은 만큼 요소요소에서 새로움과 감각이 싹트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애플샵의 노인들이다. 우리나라의 애플샵이나 프리스비 등 판매점을 가보면 젊은 층 일색인데, 상해에선 그렇지 않았다. 교육 테이블에 둘러앉아 강사의 말에 귀기울이며 맞장구치는 10여 명의 사람들 중 절반이 노년층이었다. PC에서 윈도우 OS 경험을 하지 않고 모바일 시대로 직진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테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애플 기기를 쉽게 구입할 만한 고소득 노년층도 충분하다는 방증일 테고, ‘나는 늙어서 컴퓨터 같은 거 못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많다는 거 아닐까.
짧은 출장 기간 동안의 인상비평에 불과할 테지만, 잊어버리기 싫어서 기록해둔다.
상해 사람들, 서울 놀러 오면 별 재미를 못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