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blue bottle) 성수점 오픈 풍경을 보며 든 생각들
2019년 5월 3일, 블루보틀 성수점이 문을 열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아무 말 않고 긴 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외치는 듯했다.
‘쾅쾅쾅!!! 커피 주세요, 블루보틀 커피! 굿즈 주세요, 한국 한정판 굿즈요!’
과거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풍경이다. 벌써 옛 일이 돼 버렸지만, 스타벅스는 ‘백반 한 끼보다 비싼 커피’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그것도 모두 직영점으로. 덩달아 스벅을 벤치 마크한 로컬 브랜드들도 커피 붐 시대에 동참했다. 지금은 부실한 경영으로 많이 정리됐지만, 그 빈자리는 다른 신생 브랜드들이 메우고 있다. 어쨌거나 최근 십수 년간 우리나라는 ‘커피 공화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어딜 가나 카페는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심지어 치킨집이나 편의점만큼이나 흔하다. 어쩌면 커피 시장 성장세가 정점을 찍었을지도 모를 이 시점에 블루보틀은 한국, 그것도 신흥 메인 상권인 성수동에서 시작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한국 진출 당시 이미 세계 곳곳에 침투한 글로벌 프랜차이즈였다. 블루보틀은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찍고 한국에 왔다. ‘글로벌’ 호칭을 붙이기엔 아직은 부족한 브랜드. 하지만 오늘 출근길에 보게 된 풍경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저 많은 사람들은 블루보틀의 오픈 첫날 손님으로서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평일 아침인데, 각자의 할 일들을 뒤로 미루고 오랜 시간 줄 설만큼의 가치는 무엇일까?’
건너편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인스타에 올리려고 저러는 것”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일견 동의가 된다. (자꾸 비교대상으로 내세워 미안하지만) 스타벅스 진출 당시엔 인스타그램처럼 쉽고 간편하게 인증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없었다.
옛날이라면 기껏해야 지인들 상대로 자랑하고 그쳤겠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받는 '따봉'은 경계가 없다. 중년 아재는 닉 우스터처럼, 20대 여성은 롱보드 여신처럼 행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얼마나 힙 한 사람인지, 트렌디한 지’ 증명하고 있다.
따봉을 받다 보면 자랑거리는 부족하다. 자랑거리 결핍의 시대에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블루보틀 매장에서의 인증이라니, 얼마나 섹시한가. 줄을 서지 않으래야 서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학생은 수업을 째고, 직장인은 연차를 내고, 백수는 없는 없는 지갑을 털어서 블루보틀 커피와 굿즈를 인증해야 한다.
아,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유투버와 블로거들을 빼먹었다. 기성 매체나 다른 크리에이터들이 내세우지 못하는 관점을 보여줘야 한다. 자랑거리 결핍의 시대고, 매체 과잉의 시대다. ‘작은 사치’만 허락된 불황기에 몇천 원으로 인증할 수 있는 블루보틀은 ‘개 꿀’이고 ‘핵 인싸템’이다.
이 와중에 제일 불쌍한(?) 사람들은 진성 커피 마니아 아닐까. 너나없이 칭찬하고 인증하는 블루보틀 커피 본연의 맛이 정말 정말 궁금해서, 커피 관련 직종에 종사하기 때문에 방문한 사람들 말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포토제닉 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는 식음료 매장, 인스타그래머블 하지 않은 장소는 경쟁 환경에서 써먹을 중요한 무기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다. 모던한 인테리어가 됐든, 풍부한 브랜드 스토리가 됐든, 키치함과 뉴트로라는 말로 포장된 촌스러움이든, 뭐라도 내놓아야 한다. 손님은 갈급하고 업주는 피곤한 세상이다. 이 와중에서도 잘 되는 곳은 미어터진다. Winner takes it all. 파편화의 시대고 취향 미분화의 시대라는데, 성수동에 모여든 저 파편들의 크기를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