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사례가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
이런 얘기들이 요즘 시대의 화두라면 과언일까? 창조적 일을 하는 사람이든,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든 지금을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두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공지능이 여러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이런 분위기는 우리를 압도한다. 창의력만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것처럼 말이다.
조금은 창조적인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아마도 한동안 기계가 대체하기 힘든 일을 하겠지만 종종 ‘진짜 창의력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하는 환경에서 종종 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나는 IT 회사에서 일한다. 실체적 진실이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회사는 대체로 ‘혁신의 아이콘’이나 ‘새로움이 기대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 안에서 나는 가끔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한다. 뉴트럴 한 표현으로는 비 개발자로서, 약간의 마이너 감성을 담아 표현하자면 'IT회사의 문돌이'로서.
음악인으로서 단단한 입지를 갖고 있는 김태원 씨가 언젠가 방송에서 주고받은 말은 인상적이었다. 평소 어떤 음악을 즐겨 듣냐는 질문에 그는 작곡에 영향을 받을까 봐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답했다. 표절을 회피하려는 결벽 수준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30여 년 간 그런 기조를 유지하느라 겪었을 창작의 고통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할 자신은 없지만, 나는 내 나름의 가이드를 갖고 있다. 평소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려고 하지만, 무언가 기획할 때 남이 해 놓은 것을 들여다보고 ‘차용’하는 것은 터부시 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적정선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그저 ‘최저’이거나 ‘함량 미달’의 인간이고 싶지 않아서 이 정도는 지키고 싶다.
레퍼런스는?, 구글은 어떻게 했는데?, 애플은 어떻게 했는데
와 같은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 목 언저리에서 욱 하는 기운이 뻗쳐온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름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이 나라에 표절이 만연하지’.
돌이켜보니 제조 기업이었던 첫 직장에서 15년 전에 들었던 레토릭도 비슷하다.
“삼성은 어떻게 하는데?”, “요즘 삼성전자에서 한다는 방식인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구절로 널리 알려진 구문이다. 서양 속담이 아닌 무려 성경에 새겨진 말. 그 구절을 삶의 기조로 삼은 사람들을 종종 본다. 교회도 안 다니면서.
가장 무서운 점은 따로 있다. 그놈의 ‘레퍼런스’를 적당히 자기 것인 양 만지작거려서 써먹는 사람들, 그리고 표절을 변별해 낼 안목과 식견이 없거나 오히려 묵인하고 부추기는 사람들. 딱 그 정도 수준이 이 사회의 스탠더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AI가 더 해내기 힘든 영역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