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직장인이 마음대로 상상해보는 그림
지난 11월 18일,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와 라인-야후 재팬의 경영 통합에 합의했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며칠 전부터 소문은 돌았지만, 그야말로 깜짝 뉴스였다. 한일 양국(라인이 일본 회사냐 아니냐는 논외로 두자)의 탑티어 인터넷 기업이 제휴나 협업 수준이 아닌, 경영 ‘통합’이라는 워딩을 내놓은 배경은 뭘까?
이미 많은 뉴스에서 다룬 이야기지만, 일본 현지에서 페이페이(PayPay)와 라인페이(Line Pay)가 출혈 경쟁을 하던 그림이 옛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비등하다. 표면상에서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포털 기반의 야후 재팬과 메신저 기반의 라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는 꽤 다양할 것 같다.
양사의 협력은 갑작스럽지 않다. 라인이 일본에서 전개한 알뜰폰 사업이 시원치 않자 소프트뱅크에 과반 지분을 넘긴 것도 그렇고, 벤처캐피털을 함께 조성한 바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과거와 이번 경영통합 발표, 그리고 2020년 10월 양사가 완전히 경영통합을 한 뒤에 만들어나갈 그림은 어떤 게 있을까? 일본에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예상은 충분히 많이 나왔으니 나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마음대로’ 상상해본다.
야후를 소유한 손정의 회장은 중국 알리바바의 초기단계에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를 갖고 있다. 한때 중국 내 간편 결제 시장의 압도적 지배자였던 알리페이는 텐센트의 위챗 페이에 마켓셰어를 빼앗기고 있다. 위챗 페이는 메신저 기반, 알리페이에게는 메신저가 없다.
만약 알리페이에 라인이 지원군으로 붙는다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 중국 시장에서 라인 메신저가 치고 올라갈 거라는 상상은 할 수 없지만, 중국 외 동아시아 시장에서 알리페이의 지배력이 단숨에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라인은 아시아 외 국가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라인이 힘을 주고 있는 시장에서 알리페이가 어떻게 확산될지 궁금해진다.
손정의 회장과 이해진 GIO는 공히 ‘글로벌’에 꾸준한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2천 년대 초반 검색으로 일본 시장에 도전했다가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메신저를 통해 보란 듯이 우뚝 섰다. 손 회장은 (근래 우버나 위워크 때문에 체면을 살짝 구겼지만 여전히)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VC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특정 서비스로 족적을 남긴 적은 없다.이 둘은 각자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조합이다. 아마도 북미권에서 출발해 세계시장을 주무르는 인터넷 자이언트들, 그리고 ‘인구빨’로 빅 임팩트를 몰고 온 중국의 자이언트들과 또 다른, 그리고 큰 사이즈의 플레이를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초석이 메신저와 페이먼트의 결합일 것이고, 결코 일본 시장에 국한된 행보가 아닐 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리고 한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플레이할 것인가? 국내에는 이미 몇 개 핀테크 서비스가 탑티어를 형성하고 있는데, Z홀딩스가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문득 손 회장이 7월 방한했을 때 성북동에 초대받은 인물들의 면면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는 이해진 GIO를 몇몇 그룹사 회장들과 함께 초대했고, SK 최태원 회장과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명단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라인(LINE)과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 발표에 앞서 SKT와 카카오는 10월 말 주식 맞교환을 골자로 한 ‘혈맹화’를 선언한 바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나는 마음대로 상상하며 팝콘을 들어 올린다.
※유튜브 채널 'ぱく家 박가네'의 콘텐츠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을 적어내렸습니다. 커버 사진 출처는 닛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