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취향 미분화의 시대를 살고 있을까?
손에 꼽을만한 신문사와 방송국, 잡지사 몇몇이 어젠다를 던지면 사회는 대체로 그 방향으로 갔다. 패션도 그랬다. 백화점에 가면 “올 해는 쓰리 버튼에 와이드 칼라 재킷이 유행”이라던가 “밑위가 짧은 부츠컷 청바지가 대세”라는 거스르기 힘든 지령들이 있었다. 착한(?) 사람들은 대체로 지령을 따랐다. 90년대의 나는 미치코런던 티셔츠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 에어조던으로 등골 브레이킹에 일조했고, 그보다 앞서 선배들은 조다쉬와 프로스펙스를 신었다.
옛말처럼 느껴지지만, 광통신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20여 년간 압축적으로 겪으며 사람들이 보고 듣고 생각을 나누는 창구는 다양해졌다. 얼핏 봐서는 정말로 매스의 시대가 간 것 같기도 하다. 트렌드 업계나 학자들은 ‘취향 미분화의 시대’로 명명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마라 호빵의 출현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호빵에 앞서 요식업 트렌드라는 것은 도시 곳곳에 마라탕-흑당버블티 가게를 등장시켰고, 그건 코인 노래방과 대만카스테라의 범람과 겹쳐 보인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것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물론 대만카스테라의 죽음에 어떤 방송 프로그램이 일조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한들 지금까지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
의류 트렌드를 봐도 그렇다. 지난겨울, 길거리를 지배한 바이브는 ‘양(sheep)’이었다. 뭔 얘기냐고? 후리스를 입은 사람이 너무 많이 넘실거리니 이곳이 대관령 양 떼 목장인지 명동인지 헷갈릴 정도였단 얘기다. 거기에 통 넓은 팬츠와 잠자리 안경 같은 레트로 아이템을 곁들이는 게 디폴트 같았다. 90년대 중후반생 이후로는 그런 룩이 힙(hip)으로 통하는 것 같던데, 내 눈엔 그저 브라운관 속 대학가요제의 ‘룩앤삘’이 떠오를 뿐이었다. 팬덤에게 욕먹을 얘기겠지만, 펭수가 그렇게 신선한지도 모르겠다. 상당수 카톡방에서 “펭하~”가 넘실대니까 거름 지고 장에 가는 느낌이다.
소셜미디어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피니언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10~20명 중 한 두 명. 그중 대중적 지지를 받는 사람은 더 소수다. 이들이 창조적으로 트렌드를 선도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닌 경우, 여전히 유력 매스 미디어의 한 단락을 자기 것처럼 차용 혹은 도용한다. 그래서 난 지금을 취향 미분화의 시대가 아니라 매스를 해체한 뒤 다시금 모자이크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꿋꿋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새 옷 가게에서 질감과 색깔을 기가 막히게 매칭 시키던 친구, “어디 남자가~”라는 야만적인 말 잔치 속에서 귀걸이와 염색, 단발머리를 연출하던 사람들. 그때나 지금이나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진짜 힙(Hip)을 완성시킨다. 독립적이고 파편화된 취향의 시대라는 게 전체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대부분은 두려워한다. 지난가을 겨울, 양털 후리스 입고 펭수 굿즈 혹은 이모티콘을 구입하며 힙하다고 생각했다면, 난 감히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적어도 뒤처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뒤따라 가는 게 뒤쳐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