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가 아닌 것에 '구독'이란 표현, 붙이지 맙시다
몇 년 전부터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라는 표현이 흔해졌다. `주오라(Zuora)`의 CEO 티엔 추오(Tien Tzuo)가 세일즈포스 재직 당시 기업용 클라우드 컴퓨팅 비즈니스를 업계 1위로 올려놓으면서 유명세를 탄 표현이다. 덩달아 ‘서구권 레퍼런스 제일주의’인 다수 한국 기업들의 핵심 과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과거에도 정수기 방문 관리, 유산균 음료 정기 배달, 신문 정기 구독 등에 존재하던 비즈니스 모델이었지만 최근 여러 분야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간편해진 결제 시스템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Google Drive의 저장공간을 연 단위로 정기 결제하고 있는데, 페이먼트 시스템에 등록해 둔 신용카드 정보를 통해 매년 때맞춰 대금이 빠져나간다. 과거 수십만 원을 주고 산 Adobe의 툴들도 그렇다. 내가 쓰는 두 개 툴을 위해 회사는 매월 몇 만 원 씩을 지출한다. 그 맥락에서 보면 케이블 TV와 인터넷 요금, 휴대폰 요금, 심지어 아파트 관리비까지 ‘구독 경제’와 결을 같이 한다. 구매 시점에 망설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세금 납부하듯 대금이 착착 들어오는 비즈니스 모델. 어떤 기업이든 탐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를 수식하는 ‘구독’이라는 표현은 나만 어색하게 느끼는 걸까? 대부분의 매체들이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이상하다.
사전적으로 보면 구독(購讀)은 사서 읽는다는 의미를 가졌다. 때마다 챙겨서 가져다주어 신문이나 책 따위를 읽게끔 한다는 뜻으로 사용해 온 ‘정기 구독’이란 표현은 익숙하다. 하지만 대상이 달라지면 ‘구독’이란 수식어가 어색해진다.
“나는 구글 드라이브를 구독하고 있어”라고 쓰는 식인데, 해당 상품에 ‘읽는다’는 속성이 전혀 없기에 앞뒤가 안 맞는다. “애플 뮤직을 정기 구독한다”, “제네시스 월 구독형 프로그램을 이용 중이다”와 같은 표현을 명망 있는 매체에서 그대로 쓰는 것도 해괴하다. 짐작건대 subscription economy 혹은 Subscription Business Model이라는 영어 표현을 어느 매체가 직역해서 사용하고, 다른 매체들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 썼기에 지금의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옳을까? 거꾸로 접근해보자. 영어 사전에서 subscribe는 ‘가입하다’, ‘구독하다’라고 설명된다. 즉 ‘가입형 상품’ 혹은 ‘멤버십 비즈니스 모델’ 정도의 해석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혹은 오랫동안 써 온 한국식 표현 그대로 ‘정기결제 상품’이라고 적으면 될 일이다. 구린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식하기에 낡아 보이나?
‘말 맛’에서 새로움과 혁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맞지 않는 표현을 가져다 쓰는 건 역설적이다. 미제라면 똥도 좋다던 시절은 한참 지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