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모터사이클 라이더로 돌아왔다
대학 졸업 전 2년 정도 바이크 라이프를 즐겼었다. 혼다에서 내놓은 97년식 호넷(Hornet)을 탔다. 헝그리 라이더였지만 즐겁고 또 즐거웠다. 별 기대 없이 열었던 네이버 카페에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함께 즐겼다. 공터에서 엔진오일과 점화플러그를 갈고, 가까운 계곡으로 함께 달려가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졸업 몇 개월 전에는 돈이 필요해서 효성 미라쥬250으로 다운그레이드를 했다. 호넷에 비하면 둔한 바이크였지만, 그 나름 즐거움이 있었다.
학교 선배이자 동호회원인 A형의 자취방 근처에서 소주를 마시고, 몇 시간 잤다. 아침 수업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술이 덜 깬 상태였다. 불법 유턴하던 승합차 옆구리에 들이받는 사고를 겪었다. 헬멧과 글러브를 착용한 상태라 부상은 거의 입지 않았지만, 바이크는 반파됐다. 공사판 새벽일을 나가려고 도로가에 모여 있던 인부들이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승합차 운전자는 차를 버려두고 도주했다. 그는 무면허 음주상태였다. 나는 구급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병원 침대였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경찰관의 말에 몸을 일으켰고, 경찰서로 함께 갔다. 사고 조사를 받고, 불었다. 면허 정지 수치가 나왔다. 그 수치를 토대로 사고 시간까지 역산해 음주 수치를 추정하는 ‘위드마크’ 공식에 힘입어 면허 취소 수치에 턱걸이했다. 1종 보통, 2종 소형 면허증이 동시에 날아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뼈에 새길 치욕적인 기억이다.
몇 달이 지나 대통령령으로 사면이 됐다. 두 가지 면허증 모두 한 번에 붙질 못했다. 도로의 경험은 시험장의 공식과 결이 달랐다. 유튜브가 없던 시기였다. 흐린 기억을 되짚어보면, 도로교통안전공단 홈페이지 같은 곳에 있는 장내 기능시험 영상을 보고 1종 보통 면허를 되찾았던 것 같다. 2종 소형은 3수 만에 다시 찾았다. 처음 딸 때는 재수해서 땄던 것 같은데, 더 애를 먹었다.
회사원이 되면 좀 더 여유 있게 좋은 바이크를 갖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야근에 쩐 흙수저 회사원이 모터사이클을 보유하는 데는 장벽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는 내가 바이크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바이크는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이 굳건했다. 고집이 발동했다. 어느 주말,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한 뒤 야마하 티맥스를 빌렸다. 당연히 자동차로 갈 줄 알았던 아내는 집 앞으로 나와 깜짝 놀랐다.
지금 이걸 타고 춘천까지 간다고?
출발과 동시에 뒷자리에서 “으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생전 처음 타는 빅 바이크의 가속력은 무척 생소했을 터. 경춘가도에 올라서자 아내(당시 여자 친구)의 태도가 달라졌다. “왜 타는지는 조금 알겠다”라고 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투 룸 전셋집을 두 번, 낡은 아파트와 조금 더 좋은 아파트 전셋집을 각각 한 번씩 옮기면서 나름의 살림 불리기가 진행됐다. 당연히 바이크를 살 여유는 없었다. 정말 타고 싶을 때 렌탈을 몇 번 더 했다. 그렇게 바이크를 소유하지 않은 17년이 흘렀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 10년 넘게 “오토바이 사고 싶어”라는 말을 가끔씩 내뱉었다. “나를 밟고 넘어서라”, “이혼하고 타라”와 같은 답이 돌아왔지만 잊을만하면 또 말했다. 2021년 7월 초, 마침내 반 허락이 떨어졌다. 처가 식구들이나 다섯 살 아들이 모르게 타라. 안전하게 타라. 17년 만에 복귀의 길이 열렸다.
쓸 수 있는 예산을 싹싹 긁어 시뮬레이션해보니, 오매불망 갖고 싶었던 트라이엄프의 스피드 트윈을 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선 상담을 했고, 7월 말이면 유로 5에 대응한 신형 물량이 입고된다고 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헬멧 등 각종 안전 장구를 고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7월 8일 늦은 밤, 우연히 passo에서 민트급 중고 z900rs Cafe를 발견했다. 원래 마음에 두던 기종 중 하나였지만, 신차가 언제 수입될지 기약이 없던 터였다. 과거 소량 수입됐던 차량들도 좀처럼 매물로 등장하지 않았고, 간혹 나온다 한들 민트급은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댔다. 날이 밝기 무섭게 판매자에게 연락했고, 그날 밤 만나 눈으로 확인한 뒤 바로 계약금을 보내 찜했다. 나흘 뒤, 잔금을 치르며 ‘다시 바이크’의 문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