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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Nov 17. 2020

아바가 경동시장에서 김,미역을 판다고?

ABBA, You Will Never Know

청취자들이 보내는 사연과 신청곡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깔깔대고 웃을 때가 있다. 이 사연이 그랬다.


[***3] 디제이님! 저요, 경동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하는데요. 김미역 잘 팔리게 아바에 김미 부탁


이 짧은 사연이 뭔고 하니, 본인은 경동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시는 분인데 김, 미역이 잘 팔릴 수 있게 아바(ABBA)의 'Gimme Gimme Gimme'를 들려 달라는 뜻이다.


'슈퍼그룹' 아바는 알까? 그들의 노래 'Gimme Gimme Gimme'가 한국인에게 '김, 미역 맨'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원래 주요 후렴구의 가사는 Gimme gimme gimme a man after midnight (자정이 지나면 남자를 보내주세요) 라는 뜻이지만 그 사연을 소개한 이후, 우리 청취자들에겐


'김미, 김미, 김, 미역 맨.'

(경동시장에서) 김과 미역을 파는 Man. 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혼자 보는 영화와 극장에서 남들과 같이 보는 영화의 경험이 다르듯, 음악도 같이 들으면 다르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또 다른 히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굳이 라디오를 찾는 이들이 있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https://www.flickr.com/photos/khiltscher/3841254354

내가 생각하는 팝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대부분 사람의 경우 가사가 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 내게 그 말은 본인이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며 들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 청취자들에게 Boney M의 'Rivers Of Babylon'의 후렴구는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가 되고 Dr. Hook의 'Walk Right In'의 후렴구는 '꺽다리 심봤다~'가 되곤 한다.


아바나 보니엠, 닥터훅이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이야기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제각기 다른 이유로 모두 다른 시간을 지나며 그 노래를 사랑해왔을 뿐인데.  

https://unsplash.com/photos/y7edlwBW1KM

한편 우리에게 또 영어란 아주 낯선 외국어는 또 아니어서, 부분 부분 들리는 가사로 전체 가사 내용을 짐작해보는 재미도 있다.


그 유명한 글렌 메데이로스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들으며 '낫띵스 고너 체인지 마이 럽 포유~'

아, 너를 향한 내 사랑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그 한 줄을 이해하고 나선 나머지는 '나나나나나나나~ 아이 러뷰~'로 처리해도 전혀.. 문제없지 않을까?


물론 나중에 가사 해석을 찾아보면 느낌과 전혀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의외로 느낌이 맞는 경우도 상당하다.


사람들은 정확히 언어의 뜻을 몰라도,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고 비슷한 감정을 알아채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Gimme Gimme Gimme'는 너무.. 외로우니 남자를 내려달라는 내용의 흥겨운 디스코 곡이지만 뭔가를 간절히 갈구한다는 면에서 김, 미역이 잘 팔리기를 바라는 건어물 가게 주인(김미역맨)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P


언어의 정확한 뜻은 모를지라도 그 뉘앙스, 감정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아바의 '김미, 김미, 김미'는 건어물 가게 주인에게 더 호소력 있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




가요를 선곡하다 보면 가사 때문에 의미가 한정되거나, 앞 노래와 이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깨는' 경우가 있다.하지만 팝은 (영어를 정말 잘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곤)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우스운 내용의 가사의 노래라도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내 경험을 덧씌우면 한없이 진지해질 수 있고 아무리 심각한 내용의 가사라도 신나게 흔들며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수 있다.


팝을 하나의 작품으로 가사와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감상할 것인지, 내 삶의 BGM으로 여길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곰브리치는 말했다. 미술을 좋아하는 데는 아무런 그릇된 이유가 없다고, 오히려 잘못된 편견이 미술을 싫어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감히 이 말을 팝에 적용하자면 팝을 좋아하는 데는 아무 이유도 필요치 않고, 지식도 그저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바의 'Gimme Gimme Gimme'가 무슨 내용이든, 어떤 장르든 듣는 사람이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롤러장에서 듣던 추억 때문이든, 오래전 기억 속의 그와 그녀가 떠오르기 때문이든... 아무 문제가 없다. 팝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도 어렵지 않다.


김과 미역이 잘 팔리기를 기원하면서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흔들하며 상품을 진열할 경동시장의 건어물 상인.생각만 해도 흐뭇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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