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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Dec 07. 2020

"산타 할아버지가 못 오시면 어쩌죠?"

코로나 시대, 아이들은 산타의 자가격리 기간까지 걱정한다.

  매일 라디오 방송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집단 정서를 보통 사람들보다는 많이 느끼게 된다.

  코로나 19가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즉 코로나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냐에 따라 그날그날 도착하는 문자의 색채가 다르다.  더구나 우리 방송은 아침 출근길에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지 잘 느낄 수 있다.


  최근 받았던 문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산타 할아버지가 못 오실까 봐 걱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선물은 받고 싶은데 코로나는 걱정되고, 심지어 해외 입국 예정인(?) 산타 할아버지의 자가 격리 기간까지 고려하면 지금쯤 서둘러 오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비대면에 손소독제를 갖춘다고 해도 아이들 입장에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도 선물은 받고 싶으니 매일매일 산타 할아버지가 꼭 오시길 기도하는 그 아이들을 지켜본다는 한 청취자의 사연을 보고 가슴 한쪽이 사르르, 아팠다. 물론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

코로나 시대, 아이들은 산타의 자가격리 기간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https://unsplash.com/photos/h3wtp_1cW4g)

  코로나 19 초반에는 다들 힘내서 얼른 이겨내자, 라는 문자가 대부분이었다.


  신청곡도 Queen(퀸)의 'We Are The Champions(위 아 더 챔피언스)'나 Coldplay(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비바 라 비다)'처럼 코로나에 맞서 열심히 싸우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곡들이 많았다. 그때는 문자들도 '우리 힘내요, 조금만 참으면 코로나 곧 끝납니다!'같은 내용이 많았다.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 

우리는 챔피언입니다. 나의 친구여.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We are the champions 

우리는 챔피언입니다.

We are the champions 

우리는 챔피언이에요.

No time for losers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Cause we are the champions of the world 

우리는 세계의 챔피언이니까.


/ Queen 'We Are The Champions' 중에서


  말하자면, 희망이라는 게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초반만 해도 우리는 금방 이겨낼 거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아 더 챔피언. https://unsplash.com/photos/E98JaHzoT5U

  잘하면, 내가 조금만 참으면 금방 끝날 거라는 희망.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 그러다 사람들은 몇 번의 위기와 완화, 다시 위기를 거치며 당연히, 점차 지쳐갔다. 들어오는 신청곡의 느낌도 달라졌다. 비율로 따지자면, Beatles(비틀스)의 'Let It Be'쪽이 'We Are The Champions'보다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And in my hour of darkness

제가 어둠의 시간 속에 있을 때면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그녀는 제 앞에 밝은 모습으로 서 계십니다.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그대로 두어라(순리에 맡기렴)'...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그대로 두어라, 순리에 맡기렴'


/ Beatles 'Let It Be' 중에서

비틀스는 말한다. 그대로 두어라. 순리에 맡기라고. 조금은 지쳤지만, 그래도 잘될 거라고 믿고픈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https://unsplash.com/photos


  청취자들이 보내는 신청곡에서 묻어나는 감정을 보면 그렇다.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가 점차 싸울 힘이 떨어지고 조금씩 지쳐가는 느낌. 잘 되겠지, 결국은 나아지겠지, 하고 믿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가장 심각해진 최근 사람들은 눈에 띄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청곡도 Simon And Garfunkel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나 'You Raise Me Up(당신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같은, 좀 더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의 노래들의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물론 이 곡들은 원래 우리 프로그램에 자주 선곡되는 노래들이다. 하지만 그 신청곡들이 아들이 코로나 19 확진되어 시험도 못 보고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사연과 만날 때, 이번 달까지만 나와달라는 사장님 말씀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글과 만날 때,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렸지만 수당조차 받지 못해 음악을 들으며 계속 울고 있다는 분이 있을 때, 스터디 카페를 운영하는 분이 시험을 앞두고 찹쌀떡 선물을 드리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수능 하루 전 직장 동료의 확진으로 본인도 확진 통보를 받아 수능 보는 아들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분을 만날 때, 아기의 첫 생일임에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그리고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오실까 걱정한다는 사연을 받을 때... 1년 전에 들었던 그 노래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절실하고 간절하게 들리는 것이다. 선곡하는 피디가 이 정도인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아, 우리 정말 힘들게 견디고 있구나 싶다. 노래가 나갈 때 눈물 흘리고 있다는 사연은 점점 많아진다. 이길 거라 생각했던 싸움에서 질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먼 거리 얘기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어느새 곁으로 성큼 다가와있구나, 싶다. 코로나 19 초창기에는 자가 격리 중이라는 사연도 많지 않았는데, 이제 점점 주변 사람이 확진되고, 본인이 확진됐다는 사연이 늘고 있다. 한층 코로나가 곁으로 다가온 느낌. 매일매일 받는 문자의 내용을 색(色)으로 표현하자면 초반에는 그래도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지만 이젠 점점 깊고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청취자들이 매일 만나는 거대한 불안의 한 끝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이런 때, 사람들에게 아침이 점점 깊고 견디기 어려운, 어두운 무엇처럼 느껴질 때,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오늘 들려드리는 음악 한 곡이 그분들에게 어떤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때론 무력해지는 기분이지만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시 어두운 일상을 잊고 호흡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 방송을 위해 노래를 고른다. 아이들만큼은 크리스마스엔 아무 걱정도 없이, 받고 싶은 선물만 생각하며, 설렜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그 곁에 우리가 행복한 산타의 모습으로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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