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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Feb 11. 2021

신청곡 못 들려줘서, 미안해요

고마운 청취자의 별세에 부쳐

볼 것, 들을 것 많은 세상이지만 여전히 라디오를 찾는 사람들은 많다. 그것도 매일, 찾아오는 이들은 감사하게도 존재한다. 운전하면서, 집안일하면서, 운동하면서, 삶의 BGM으로 라디오를 켜 두는 이들. 라디오 앱으로 실시간으로 방송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주고받는 이들. 라디오 프로그램은 매일 그 자리에 있으므로, '프로그램' 혹은 '작품'이라는 말보다는 '일상'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 그렇게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의 한 켠에 자리매김하는 행운을 얻는 것이다.


매일 우리 프로를 찾는 청취자들 중에는 자주 신청곡을 보내오거나, 진행이나 선곡 등 방송 내용에 대해 크고 작은 반응을 보내는 이들이 꽤 많다. 아마 청취자들은 청취자가 워낙 많을테니 우리가 그들을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매일 누군가의 신청곡을 꾸준히 받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보인다. 지금 하는 프로는 아니지만, 예전에 했던 프로에서는 그래서 청취자의 신청곡을 받아서 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곡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누군가의 취향이 읽히기 시작한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해, 약간은, 아주 조금은 알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매일의 만남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 프로는 하루에 두 시간 방송된다. 사람들은 짧게는 5분에서 10분, 길게는 두 시간을 연속으로 우리 방송을 듣는다. 매일 누군가를 5분 동안 만난다고 가정해보라. 어느 순간, 그것도 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가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적어도, 익숙해질 것이다.


그 청취자도 그랬다.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바로 전에 맡았던 프로그램에 거의 매일 오는 단골 청취자였다. (지금은 팝 프로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가요도 선곡하는 프로를 하고 있었다.) 오셔서 음악을 청하시곤, 좋으면 좋은 대로, 음악이 별로면 별로인 대로, 본인의 의견을 남기고 함께 듣는 이들과 안부 인사를 나눴다. 신청곡을 안 들려드리면 때론 투정을 부리기도 하셨더랬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의 출근길 팝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고, 워낙 우리 채널 골수 청취자였던 그는 가끔씩 우리 프로에도 들러 팝을 신청하곤 했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가요와 팝을 몇 곡 정도 바로 댈 수 있다. 그는 아델과 알리를 좋아하며, 옛날 드라마 '종합병원'의 ost를 좋아한다. 우리 가요를 팝으로 번안한 곡도 좋아한다. 매일 누군가의 취향을 읽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기는 몇 마디 말에 저마다의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그는 이런저런 병을 앓았고,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연을 가끔씩 보내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가끔씩만 그의 신청곡을 들려주었다. 아침에 듣기에 조금 우울한 곡들을 좋아하는 분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는 가장 인기 있는 곡보다, 본인이 찾은 이른바 'B면'에 있을 법한 노래들을 좋아했다. 더 많은 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노래를 선곡해야 하는 것이 라디오 pd의 숙명이라, 아무래도 그의 신청곡을 자주 들려드리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의 발길은 뜸해졌고, 나는 팝보다는 가요를 좋아하는 분이니 아마 출근 시간엔 다른 걸 들으시나 보다, 하고 넘겼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우리 채널의 다른 가요 프로에서 활동하시곤 했으니까.


다른 청취자가 그의 부고 소식을 알렸다. (사진/unsplash)


그런데 며칠 전, 또 다른 청취자가 글을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나이도 많지 않으신 분인데,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는 것이다. 그의 조카가 부고 소식을 다른 프로그램에 알려왔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접하는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청취자들도 우리를 듣고 보지만, 우리도 청취자들을 듣고, 보고, 무엇보다 기다린다.  워낙 우리 채널에 상주하다시피 한 청취자라, 많은 이들이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가사를 긁어 우리 앱 채팅창에 올리기도 하고, 음악에 대한 식견도 있어 본인을 'OO(지역명)의 임진모'라고 불러달라던 사람이었다. 옆자리 직원이 임신했다며 축하 사연을 보내고, '네 자리는 내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 말라'던 사람이었다.


그의 부고 소식으로 우리 방송 게시판은 모두 슬퍼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진행자도 나도, 그랬다. 결국 방송을 통해 부고 소식을 알렸다. 그 소식을 알리지 않고는 더 진행이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었다. 성함도 특이하시고, 워낙 우리 채널 전체에 자주 소개되던 청취자라 이름만 듣고 아시는 분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애도한다는 분도 있었다. 사실 어떤 청취자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반인의 죽음을 왜 방송으로 들어야 하나 싶었을 것이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그분들에겐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청취자는, 그냥 ‘아무나’는 아니다. 매일 방송을 들어주고, 신청곡을 보내는 청취자라면 더욱더. 우리는 함께 일상을, 시간을 공유해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의 부고를 전하며 그가 생전에 자주 청하던, 그러나 거의 들려주지 못했던 아델(Adele)의 'All I Ask'를 틀었다.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른, 그가 제일 많이 청했던 팝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 앞이 흐려지면서 눈물이 흘렀다. 나 왜 울지, 순간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슬펐다. 마치 잘 아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그는 늘 가슴에 풀어야 할 응어리가 있는 듯, 애달픈 노래를 좋아했다. 하지만 어떤 음악에도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퀸(Queen)을 틀면, '헤드뱅잉 하는 ***를 만들어 달라, 콧수염 달린 ***를 만들어달라'던 사람이었다. ***는 우리 라디오 앱의 대표 캐릭터, 이모티콘 같은 존재다. 음악이 나가면 그 캐릭터로 춤을 추기도 하고, 기타를 치기도 하고, 지루해하기도 하는. 그는 이모티콘으로도 노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라디오 청취자와 제작진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는 것일까. 친구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선곡한 노래들이 그의 일상을 채워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뜨거워진다. 내가 들려드리는 노래가 어떤 이의 삶의 한 장면을 채운다고 생각하면, 너무 과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삶의 일부분을 채워온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 늦게 신청곡을 들려드려 죄송하다. 많이 보내주셨는데 더 들려드리지 못해 송구하다. 매일 보내주시는 문자를 보며 감사해하고, 기억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시간, 적어도 3년이라는 시간이 그 청취자와 나 사이에 흘러온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누군가와의 시간이,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 고였다, 흐르고, 흘렀다 할 것이다.


참 고마웠어요.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시길, 거기서도 좋은 음악과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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