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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Mar 20. 2021

남편의 등에 기대 울던 밤

가장 어두운 날, 유일한 위안

<낭만 없는 인간의 좋은 연애와 결혼할 인연에 대한 고찰 5>


그런 날이 있다. 온 우주가 ‘너 한번 죽어봐라.’ 하는 것 같은 날.


있는 힘을 다해 잘 견뎠다고 생각하고 한숨 돌리려는데 돌아선 걸음 뒤로 총알이 날아오는 그런 날.


남편의 등에 기대 울던 그 밤도 그런 날이었다.


몇 달간 계속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많게는 네 번씩 병원을 오가고 있다. 3월 초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엄마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셔야 한다. 괜찮다가, 갑자기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피가 나온다. 귀 천공 때문이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수술을 고려할 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 80대의 엄마는 수술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부모님의 집이 어둡다. 욕실로 향하는 복도에 자동 센서등을 두 개 사서 달았다. 가까이 가니 반짝, 하고 불이 들어온다. 한사코 싫다던 아버지는 등이 '길을 밝혀주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한다. 저 등이 우리 가족의 앞날도 밝혀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 부모님의 욕실에 작은 욕조가 필요하다. 몸을 담그실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욕조가 과연 최선일까. 낙상 사고가 생기면 어쩌지. 어떤 욕조가 필요할까. 문 열리는 욕조를 알아본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욕조가 나온다. 부모님 집 욕실 사이즈에 맞지 않는다. 포기한다.


부모님 집에 청소기가 고장 났다. 부모님께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알아본다. 알아보고, 또 알아본다.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으니 병원 안내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했다. 엄마도 거동이 불편하시니 우리 가족에겐 한 번씩 요양보호사가 꼭 필요해질 것이다. 자, 그다음은 또 뭐지. 아버지의 대상포진. 예전에 엄마가 앓은 적이 있어 바로 대상포진임을 알아보았다. 빨리 피부과로 달려가야 해. 수포가 올라온 것을 보고도 가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어르고 달래 다시 병원에 간다. 퇴근 후, 하필이면 쉼이 절실했던 날의 오후였다.


새벽 6시까지 출근. 방송 마치자마자 부랴 부랴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상. 주말 근무가 많고 대체 휴가를 시간제로 쓸 수 있어 병원에 동행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다행이지. 아버지가 그래도 우리를 알아보고 대화가 가능한 게 어디인가, 이대로만, 제발 이대로만, 여기서 증상이 멈추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는 자리에 누울 것이다.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출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일 뿐이다.


병원 입구로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어왔다. 엘리베이터는 꽉 차있었다. 예약을 하고 가도 한두 시간씩 진료를 기다려야 한다. 세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도 환자는 너무 많았고, 병원 인력은 늘 턱없이 부족했다. 병원에 몰린 환자들은 저마다 그늘을 안고 있었다. 그 고단한 얼굴들에 피어난 죽음의 그림자가 보인다. 애써 외면한다. 아버지나, 엄마와 농담을 나누며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아이패드를 켜서 부모님과 오목을 두었다. 엄마는 이제 막 내게 오목을 배운 참이었다. 자꾸 귀여운 실수를 했다. “당신이 졌네!”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뇌경색을 앓았던 엄마에게 훈수를 둔다. 다행이었다. 아버지의 인지 능력이 아직은 괜찮다는 사인이 보일 때마다 잠시 안심한다. 웃는다. 다행이야. 저것 봐, 괜찮으신걸.


그러다가도 아버지는 내가 여길 왜 왔지, 어디가 아파서 왔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물으신다.


마음이 흐려진다. 치매 환자를 대하는 법을 알려준 책에서 절대 화를 내면  된다고 했다.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은 , 우리 부녀의 사이는 역대 최고로 평화롭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질문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답한다. “피부과 왔잖아. 아버지 대상포진이라 와야 .” 웃었다. “, 그렇구나.” 이해한  같은 아버지는 잠시 뒤에  내가  여기 왔냐고 묻는다. 괜찮다.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에겐 아이패드와 오목이 있었고, 진료 순서도 다가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날들은 그렇게 견딜만했다. 아버지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아직 같이 오목을 두고, 농담을 나눌  있음에 감사했다. 괜찮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문제의 그날은 엄마의 이비인후과 진료가 있던 날이었다.


전날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남은 에너지를 긁어내 방송을 하고, 엄마가 기다리고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방송 때문에 당일 검사시간에 제때 도착할 수가 없었다. 바로 전날 아버지 피부과 진료를 보러 온 김에 이비인후과 근처의 검사실로 가서 예행연습도 했다. 전날, 엄마의 귀에 최대한 가깝게 입을 대고 검사실을 가리키며 말했었다. “여기서 두 가지 검사를 받고, 바로 맞은편에 저 검사실로 가서 마지막 검사를 받아야 해. 교수님 진료는 딸이 금방 올 거라, 오면 보겠다고 얘기하면 돼.”


이런 말을 엄마에게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기특하게도, 대견하게도 엄마는 혼자서 검사를 잘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고생할까봐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엄마, 잘했네. 걱정에 졸아들었던 마음이 펴지는 것 같았다. 검사를 마치고도 우리는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두 시간가량을 기다렸다.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에 온 엄마와 방송이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온 나. 우리 둘은 또 콩나물시루 같은 병원 대기실에서 계속 기다렸다. 그래도 기뻤다. 엄마가 혼자 검사를 끝마치셨다는 것이. 또 다행이었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 ‘다행’이 있다더니 정말 그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교수님은 환자가 고령이고 병이 많으니 일단 2주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정말 전신마취 수술을 하게 될까. 80대인 우리 엄마는 괜찮을까. 수술을 한다면 미리 가야 하는 과가 많았다. 신경외과, 순환기내과로 가서 항응고제를 끊어도 괜찮은지 문의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신경외과 교수님은 아무래도 조심하셔야 한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빚쟁이들처럼 부모님의 몸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한쪽을 막으면, 다시 한쪽이 몰려왔다. 그 빚은 어디서 온 걸까. 고개를 흔든다. 아니, 아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야. 꽃이 피고 지듯이.


교수님은 엄마의 보청기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 3개월 정도는, 수술한 귀 쪽의 청력이 지금보다도 나빠질 것이기 때문에. 나쁜 귀에 맞춰 제작한 보청기를 반대쪽 귀 쪽으로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급적 빨리 바꾸어서 익숙해지게 하고 싶었다. 보청기도 청력이 아예 없어지면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들릴 때, 익숙해져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다. 지금 정도만 유지됐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소박한 바람뿐인데... 점점 나빠진다.

 

보청기 방향을 바꾸기 위해선 그날 한 청력검사 결과지가 꼭 필요했다. 엄마가 꿋꿋하게 혼자서 해낸 그 검사들 말이다. 보행기를 밀고 많은 사람 사이를 오가며 잘 들리지도 않는 엄마가 혼자 해냈을 그 검사의 결과지가.


이 정도면 우리 참 잘 참았고, 잘 견디지 않았나. 피로가 극에 달했다. 어떻게든 빨리 결과지를 받아서 나가고 싶었다. 결과지를 받으려면 병원 1층에 있는 별도의 창구로 가야 한다고 했다. 금요일이라 사람들은 더더욱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앉을 자리도 없었다. 무거운 가방을 계속 등에 지고 엄마와 엄마의 보행기를 같이 챙겼다. 지갑은, 핸드폰은 어디있지. 정신이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다른 창구. 결과지를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본인 신분증이 없어서였다. 본인이 직접 왔고, 오늘 검사를 받았으며, 바로 그 검사로 방금 이비인후과에서 진료까지 받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발급해줄 수 없다는 거였다.


안다. 꼭 필요한 절차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제발 그 결과지를 받아서 진심으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이제 그만 병원에서 나가서 조금만 쉬고 싶었다. 자고 싶었다. 빨리 보청기 방향을 바꾸고 싶었다.


본인 신분확인이 안 돼서 발급해줄 수 없는 거라면 방금 받은 검사와 진료는 무엇이란 말인가. 80대 노인이 몇 시간을 기다려 검사와 진료를 받았으면 보청기를 위한 청력검사 결과지 정도는 줘도 되는 것 아닌가. 속에서 다른 내가 말했다. 하지 마. 저분들 입장에선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또 다른 나는 울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본인이 여기 직접 왔는데. 방금 검사를 받고 왔는데. 이 정도도 바로 못 떼주는 거야? 정말? 창구 직원은 옆에 있는 무인발급기를 가리키며 저기서라도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오라고 했다. 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걷기 힘든 엄마를 모시고 갔다.


이번에는 무인발급기가 엄마의 지문을 인식하지 못했다.


자꾸 인식을 못하니, 점점 초조해졌다. 우리 뒤에 줄 선 사람들을 의식하며 몇 번이고 엄마의 지문을 지문인식기에 갖다 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내가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지문인식기에 정확히 지문을 갖다 대지 못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빨간 불빛이 나오는 부분에 정확히 갖다 대려고 애썼다. 엄마는 자꾸 지문인식기 위쪽으로 엄지 손가락을 댔다. 이미 창구에서 속이 상해버린 나는 짜증이 났다. ‘엄마, 거기 아니고 여기.’ 결국 화를 흘리고 말았다. 끝내 지문인식기는 엄마의 지문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냥 집에 가란다. 지문인식기도, 창구 직원도.


누굴 원망하겠는가. 절차나 기록이야 병원 입장에선 중요한 것이고, 잘 알아보지 않고 신분증을 안 가지고 온 우리의 잘못이니 뭐라고 하겠는가.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인데, 아무나 원망하고 싶었다. 원망할 대상이 없으니 더 속상했다.


엄마를 택시정거장에 있는 의자에 앉혀두고 약국에 약을 타러 가면서 울음이 터졌다. 눈이 건조해서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도 처음 듣는 소리가 내 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불안과 슬픔이 가슴속에 가득 차서 다 관두고 싶은 기분이었다. 화살이 밖으로 향하면 분노가 되고, 안으로 향하면 우울이 된다. 분노는 나를 향했다. 약국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약국을 등지고 엉엉 울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조차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 이야기를 막 늘어놓았다. ‘우리 다 정말 열심히 했잖아. 최선을 다했잖아. 그까짓 거, 청력검사 결과지 정도는 본인이 직접 왔는데 그냥 좀 주면 안 돼?’, '잘 걷지도 못하는데.', '절차 이해하지만 80대 노인인데.’ ‘그럼 방금 검사받은 사람은 대체 누구라는 거야.'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사라지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장 상처 받을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지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온갖 부정적인 말을 하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달래주었다. 진정시켜주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진정제였다. 무척 바빴던 날이었음에도 남편은 나를 외면하지 않고 일곱 살 아이를 달래듯 진정시켰다. 남편은 같이 병원 시스템을 원망해주고, 공감해주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한참 엉엉 운 나는,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약국에 들어가 약을 타올 수 있었다. 약사님은 '얘 또 왔네'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도 가니 약국 VIP 리스트에라도 오른 것인지 나에겐 달력도 두 개씩 주곤 하는 분이었다.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니다 보면 예민해지기 일쑤다. 그런 예민함은 잘 참다가도 이상한 부분에서 터진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잘 참았는데, 이 정도는 쉽게 넘어가면 안 되는 건가 하는 기대가 산산조각 날 때다. 중요한 진료를 끝내고 이제 한숨 좀 돌리려는데,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기분이다.


병원에 계신 분들이 피곤한 것은 이해하지만, 젊은 나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흘리듯 설명하시고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릴 때, 같은 질문을 다시 하면 짜증 난다는 얼굴로 불친절하게 설명할 때. 보호자인 나는 물어야만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나만 보고 있는데. 그들은 그렇게 묻는 나를 대단히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 마음속에 균열이 생긴다. 결정적으로, 내게 소중한 이들을 성가신 존재인 양 대할 때. 사람이 아니라 망가진 부품처럼 취급할 때. 내가 사랑하는 이가 단지 환자등록번호 정도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때.


나는 무너진다. 터진다.


그런 밤이면 나는 자고 있는 남편의 등에 얼굴을 기댄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눈물도 나지 않지만, 가슴속에서부터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날 남편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세상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존재가 있음을 알기에. 내가 사라지면 진심으로 슬퍼할 사람이 있고 그래서 나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걸 알기에.


여기까지가 그날의 길었던 이야기다.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가요. (사진 unsplash)


어떤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할까.


가장 어두운 순간에 자기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두에게 기준은 다를 테지만 적어도 힘들 때 나를 더한 어둠으로 몰아넣는 사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같이 있으면 최악의 순간이라도 약간의 빛을 되찾게 되는 사람.. 남편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어두운 복도를 밝혀주는 센서등 같은 사람. ‘안 보이겠지만 여기 작은 빛이 있어.’ 하고 알려주는 사람. 길을 잃을 것 같을 때, 앞이 깜깜할 때 자동으로 켜지는 그 불빛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우리 엄마가 그렇듯, 나도 더듬더듬 다시 주변을 보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자 남편은 전보다 더 자주 우리 부모님을 찾는다. 일이 바쁘고 지치는 날이 많아서 외면하고 싶기도 할 텐데,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눠주고 있다. 주말에는 한 번씩 식사를 같이 한다. 오늘은 남편 혼자 부모님의 집을 찾아 아버지에게 하모니카를 연주해 달라고 졸랐단다. 아버지의 인지 능력을 지켜보려고 나와 엄마도 자주 아버지에게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곤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아버지는 남편의 부탁에 약하다. 결국 아버지는 사위를 위해 하모니카를 불고, 오르간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남편은 고집불통인 우리 아버지를 움직이는 사람이다. 너무나 부드럽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버지가 장기를 두실 줄 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남편은 아버지가 장기를 젊었을 때부터 아주 잘 두신다는 사실을 알아내곤 한 번씩 함께 장기를 두겠단다. 눈물이 났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주도적으로 알아봐 주었고, 어떻게 하면 나의 부모님을 잘 돌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주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혼자가 아니구나. 사라지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삶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이미 일어난 문제도 있고, 일어날 문제도 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새 과제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 함께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의 존재는 상상 이상으로 큰 힘이 된다. 겉으론 묵묵히, 꿋꿋한 체하고 있지만 속으론 한없이 무너지는, 나 같이 약해빠진 사람에겐 더 그렇다. 물론 내 부모님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이며, 내가 지고 가야 할 문제다. 남편의 문제가 아님을 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해나갈 때 남편이 힘이 돼준다는 것이다.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겐 그런 사람이 너무나 절실했다.


다시..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이 가장 불행할 때, 그 사람과 있으면 좀 나아질 것 같냐고. 그 사람과 함께 어려움을,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그려지느냐고.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모든 세계가 오는 것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그의 모든 행복과 불행이 함께 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이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불행을 내가, 나의 불행을 그가 함께 했을 때 삶이 조금은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될 것 같다면...


어쩌면 그 사람이 당신의 남은 날들을 곁에서 지켜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의 등에 기대 그의 냄새를 맡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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