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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Mar 28. 2021

“강아지를 좋아하시나 봐요?”

약한 이들과 공존하는 그의 방식에 대하여

<낭만 없는 인간의 좋은 연애와 결혼할 인연에 대한 고찰 6>


사람마다 마음이 열리는 포인트는 다르다. 나는 겁이 많다. 일단 상대에게 믿음, 혹은 신뢰감이 생겨야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일단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야 마음이 열리는 타입이라고 할까.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소개팅을 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낯선 상대를 만나는 것은 내겐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연의 힘인지 결국 외로움은 두려움을 이겼고, 처음으로 나간 소개팅에서 미래의 남편을 만난 것이다.


남편과 소개팅에서 첫 만남을 갖고 꼭 일주일 후 우리는 두 번째로 만나게 됐다. 첫 만남 때와는 다르게 남편은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를 깔끔하게 챙겨 입고 구두를 신고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가 친구처럼 잘 통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직은 어색했다. 괜찮은 사람 같긴 한데, 마음을 열어도 되나 싶은 두려운 마음이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기에 말은 잘 통하지만 아직은 주춤하는 상황이었다고 할까.


그러다 그날, 남편에게 긴장이 풀리고 내 마음도 약간 깨닫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던 중,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왔다. 흰색 강아지였는데, 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말티즈나 푸들류였던 것 같다. 횡단보도로 엉덩이를 실룩이며 걸어가는 강아지를 보며 남편은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웃음을 지었다. 아직 긴장이 섞인 우리 사이에선 나오기 어려운, ‘찐’ 웃음이었다.


남편이 그 강아지를 보고 귀엽다고 웃는데 질투심도 아니고...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너무 귀여워하니까. 그 순간 지난주에 처음 만난 이 남자가 뭐라고 내가 강아지한테 이런 질투 비슷한 감정이 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좋아하시나 봐요?” (=나보다 저 강아지가 더 좋니?...)라는 내 질문에 그는 신나게 집에서 키우는 말티즈 ‘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남자의 꿈은 나중에 가족과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며 사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강아지는 물론이고,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동물을 좋아한다. 지금도 우리 부부가 카톡으로 가장 많이 공유하는 사진은 주로 동물에 관련된 것들이다. 남편은 동물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을 적어도 하루에 한 개 이상은 꼭 보낸다. 심지어 소통의 도구로도 활용한다. 나한테 미안한 일이 있을 때는 은근슬쩍 불쌍한 표정의 아기 골든 리트리버 사진을 보내는 식이다. 이게 부부 카톡인지 동물 사랑방 모임 카톡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두 번째 만남에서, 남편이 동물을 좋아한다는 건 내겐 큰 호감 요소였다. 동물을 키우고 돌보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는 요다가 아니라 시댁에서 키우는 말티즈 ‘아리’다. 남편을 아주 좋아한다.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구나, 믿어도 되겠다고 느낀 두 번째 장면.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시댁 어른들을 만났을 때였다. 양가에서는 우리의 만남을 초반부터 격하게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거의 삼 개월 만에 양가 어른들을 한 번씩 뵙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남편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남편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남편 친구들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시어머니를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남편은 반에서 자폐증이 있거나, 발달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 잘 다가가고 많이 챙겨줬다고 한다.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이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들에게 ‘삼류 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여 놀릴 때, 남편은 친구가 되었다.


남편은 그 친구들을 돌보지 않았다. 심플하게 그냥 잘 지낸 거다. ‘부족한’ 친구들을 일방적으로 돌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친구들에게 조금 ‘배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친구들이 성적표를 받았는데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더란다. 한 명이 ‘나는 찍었는데 두 개를 맞았다’고 하니 그 옆 친구가 ‘나도 찍을걸..’이라고 해서 다 같이 웃었던 일도 있다고 했다. 저 장면은 남편에게 그저 즐거운 추억이었고 그들은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이니 딱히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그 모습에 반했다.


남편에게 반했던 또 다른 장면.


남편은 그의 할머니를 모른 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편의 할머니는 사실 아들인 시아버지조차 모시기 힘들어했던 ‘어려운’ 분이었다. 사고도 많이 치셨고, 성격도 종잡을 수 없어 형제들 중 모두가 모시지 않겠다 하여 막내인 시아버지가 모시게 된 것이었다. 물론 천사 같은 시어머니의 노고가 컸겠으나, 실제로 집안에서 할머니와 제일 많이 붙어있었던 건 남편이었다고 했다. 가족끼리 같이 놀이동산에 가거나 여행을 가면, 시부모님 대신 남편이 할머니를 전담해서 모시고 다녔다고 했다. 한창 놀이동산을 뛰어다니고 싶었을 나이라 자신에게 할머니를 맡기는 다른 가족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하면서도 남편은 할머니를 잘 모셨다.


작은 집에 다섯 식구가 살면서 어두워질 일도 많았을 텐데, 남편은 그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늘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하곤 했다. 남편, 아주버님, 할머니 셋이서 하나뿐인 화장실 쟁탈전을 벌인 일.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를 정성껏 닭으로 키워뒀더니 할머니가 말도 없이 잡아서 잡수신 일을 이야기할 때 빼고... 남편은 늘 웃으며 그 시절과 할머니를 기억했다. 그에 버금가는 사건 사고들이 많았음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편은 집안에서 자식조차 외면하는 할머니를 잘 챙기는 손자였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빈소에서 유일하게 눈물 흘리는 사람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왜 호감이 생기기 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부터 알아보게 되었을까. 그건 내 가슴속에서 나는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노인이나 장애인에 대해 불쾌한 농담을 하거나,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 비정규직, 서비스직 직원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 마음을 접게 되었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불편했다.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미래에 나에게 안 좋은 상황이 닥쳤을 때, 혹은 내가 약자가 되었을 때 나를 어떻게 대할지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부로 대하는 대상은 미래의 내 모습이었다. 연애하면서 서로의 바닥을 보아야 한다거나, 제일 나쁜 면을 한 번쯤은 보아야 하는 이유도 그럴 때를 위해서가 아닐까. 어떤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런 배우자가 돼 주고 싶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약자에게 친절하거나, 잘 돌보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선한 사람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상으로도 그렇고, pd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해본 경험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오히려 많은 경우 약자를 통해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거나 때론 그들을 이용해 개인적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기도 한다. 어떤 단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떤 사회활동에 참여하느냐를 보고 그 사람의 선함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급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활동에 참여하는지, 어떻게 약자들과 함께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나는 약자들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본인의 가치를 높이는 부류들을 진심으로 혐오한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은지를 고민해볼 때 꼭 그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되, 그것이 특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종류의 ‘약함’이든, 그건 그저 그 사람의 ‘일부’로 생각하고 공존하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남편은 자폐증이 있는 친구라고 하여 무조건 배려하거나, 돌봐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같이 어울려 놀았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도 시어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시지 않았을까.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우리 아버지와, 거동이 어려운 우리 엄마와도 남편은 잘 지내는 중이다. 나는 우리 엄마, 아버지의 장애와 아픈 곳이 더 많이 보이고 자꾸 그분들을 환자로 인식하려는 우를 범하는데, 남편은 그냥 즐겁게 우리 부모님과 공존한다. 그런 남편을 보며 반성하게 된다. 엄마를 엄마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있는 그대로 온전히 대해야겠다고. 완전하지 못하다 해서, 온전치 않은 것은 아니다.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며 함께 잘 지내면 된다. 남편은 내게 그걸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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