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엔 내 딸이 아랫집엔 엄마가 살았으면 좋겠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관리실을 통해 연락이 왔다.
“아래층에서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층간소음이 너무 심하다고요.”
나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얘들아, 아래층에 사는 분이 요즘 많이 힘드시대.
우리가 조금만 더 조심해줄 수 있을까?”
남편과는 사과 편지와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가족은 이사전에도 이사후에도 찾아간적 있는 아랫집을 다시한번 찾아갔다.
어째서인지 벨을 누를때마다 문이열리지않던 집.
왠지 모르게 낯설은 이곳에 오기도 전부터 미움을 산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기척은 있었지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문 앞에 편지와 선물을 놓고 돌아섰다.
다음 날.
그 선물은 고스란히, 나와 아이들의 손편지까지 포함해서 우리 집 문 앞에 다시 놓여 있었다.
그것은 무언의 말 같았다.
“이해할 생각도, 받아줄 마음도 없습니다.”
나는 조금 이해받고싶었던가보다.
이렇게나 애를 쓰고있습니다. 물론 할수있는 최선을 다해 매트를 보강하고 슬리퍼를신기고 규칙을정하고 더욱 자주 주의를 주겠어요. 하는 다짐이라도 양해받고 싶었던가보다.
가해자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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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았던 적이없는 나는 여전히
"조용히 해라, 뛰지 마라, 사뿐사뿐 걸어라"
를 입에 달고 산다.
아이들이 방 안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순간에도,
나는 한 박자 늦게 반응한다.
“지금 밑에서 들릴지도 몰라. 조용히 하자.”
사실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자랑이고, 오늘을 살아 있는 증거인데
그 순간마다 나는 먼저 걱정하고, 제지하고, 조마조마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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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도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조심하지않고, 소음의 고통을 무시하고, 자신의 자유만을추구하는 사람들을 대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집에서 발생했을 소음에 대해 변명을 하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조금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층간소음의 가해자의 하루는, 그렇게 무심하거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이쁘게 깔깔 거리는 아이들을 마냥 바라보고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나는 다시 말한다.
"얘들아 조용"
어떤날은 잠시도 쉬지않고 싸우는 아이들을 떼어놓지못하고, 저녁밥도 지을수가없어
세돌도 안된아이에게 자극적인 영상을틀어 영혼을 빼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때도 있다.
가해를 멈추고 일상생활에 들어설수있기까지
어떤 부분을 놓치며 살아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게 우선이니까.
"살아있음" 그 자체인 아이들의 움직임에 죄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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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소리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장황하기만 한 글을 여기까지 읽어내려가며
화가 나신 분들도 있겠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떤 층간소음의 피해자라면,
조심스래 가해자의 마음을 대신 전해본다..
위층 누군가는 당신보다 더 예민하게
자기 집 아이의 발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큰 소리가 날때마다 더 큰소리로
죄송합니다
를 외치고 싶을지도 몰라요.
우리 조금만, 이해하며 살아요.
물론 조심할게요.
오늘도 특별히, 평범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