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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Jul 03. 2019

크고 작은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블랙 독> 


엄마, 아빠, 딸, 아들, 딸이 사는 3층짜리 주택 앞에 어느 날 아침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개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빠. 

검은 개에 관한 전설 때문이었을까. (영국 전설에는 검은 개의 모습을 한 유령이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개라고 하기엔 몸집이 거대하고 눈이 빛나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저승사자같은 느낌인 듯.) 아빠는 너무 놀라 들고있던 접시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즉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이 비상사태를 알리지만 경찰은 웃으면서 "외출하지 마세요~" 한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다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엄마. 엄마도 너무 놀라서 들고있던 머그잔을 떨어뜨린다. 

큰딸도 아들도 모두 놀라 들고있던 칫솔과 곰인형을 떨어뜨린다. 

가족들은 모두 혼비백산이 되어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검은 개가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큰 이불 속에 꽁꽁 몸을 숨긴다. 막내딸, 꼬맹이만 빼고. 

꼬맹이는 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대문을 연다. 


 

검은 개 앞에 서서 꼬맹이가 소리친다. 

"우와, 너 덩치가 진짜 크구나!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나를 잡아먹으려면 나부터 잡아야 할 걸."

꼬맹이는 달리고 검은 개는 뒤를 쫓는다. 

나무 아래를 지나고 다리 밑을 지나고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지나면서 검은 개의 몸집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꼬맹이와 비슷한 정도까지 몸집이 줄어든 검은 개는 냄비, 샐러드보울, 뒤집개 등으로 무장한(!) 가족들 앞에 평범한 반려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꼬맹이의 용기에 감탄하며 기뻐한다. 

The End. 



검은 개는 어떻게 몸집을 줄일 수 있었을까?

정말 유령이기 때문일까?

그림책 속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정답을 찾을 수 있다. 

놀랍게도 검은 개는 원래 평범한 크기의 평범한 개였다! 

가족들이 과하게 반응하며 호들갑을 떨 때마다 몸집이 점점 더 커진 것 뿐이다. 

아빠, 엄마, 큰딸, 아들은 검은 개가 거대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개는 커졌다. 

꼬맹이는 검은 개와 함께 놀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개는 작아졌다. 


작가 레비 핀폴드는 이 책을 통하여 두려움을 대하는 인간의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두려움에 휩싸여 망상을 키워내 더 큰 공포 속에서 불안해하거나 또는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꼬맹이를 위대한 영웅으로 그려낸 걸 보면 작가는 후자의 태도에 손을 들어준 것 같아 보인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서평란에는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두려움에 지레 겁먹지 말자'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은 하나같이 '나도 꼬맹이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겠다'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용기를 내고 싶으면 그냥 막 용기가 생기는 건가?  

그게 쉬우면 이 책이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리가 없다. 

마음 속에서 두려움을 키워가는 건 인간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도 작가는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꼬맹이네 아빠의 이름이 Mr. Hope(희망씨)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Mrs. Hope, 언니는 Adeline Hope, 오빠는 Maurice Hope. 심지어 이름이 '희망'일 정도로 밝고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사람에게도 두려움에 맞서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빠인 Mr. Hope은 검은 개를 발견하자마자 즉시 경찰서에 보고하는 조치를 취할 정도로 현명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 Mr. Hope을 '호프씨'라고 번역한 건 조금 아쉽다. Hope라는 단어에 담긴 뜻을 표현해줄 수 있는 다른 단어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번역가는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번역 과정에서는 늘 알면서도 놓칠 수밖에 없는 뉘앙스들이 있고 가끔 그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왼쪽] Mr. Hope이 처음 개를 발견했을 때 개는 평범한 크기였다. [오른쪽] 검은 개의 최초 발견자는 아빠라고 본문에서 얘기하지만 사실 꼬맹이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꼬맹이(Small Hope)는 왜 다른 가족들과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었던 걸까?


[추측 1 - 아빠가 검은 개를 발견하기 전에 꼬맹이가 먼저 발견했다.] 

본문에서는 검은 개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아빠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꼬맹이도 그 자리에 함께 있다. 바깥이 내다보일만 한 창가에 걸터앉아 태연하게 토스트를 먹고 있다. 

어쩌면 꼬맹이는 '얼른 토스트 먹고 나가서 개랑 놀아야지~!'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개의 몸집이 크든 작든 아직 어린 꼬맹이에게는 그저 귀여운 개일 뿐이니. 

꼬맹이는 원래 다른 사람보다 겁이 없고 용감한 아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겁쟁이들!"이라고 큰소리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잘 활용한 것이다. 


[추측 2 - 꼬맹이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꼬맹이는 정말로 가족 중 제일 마지막으로 검은 개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꼬맹이도 역시 무서웠을지도 모르고 다리가 후들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은 개에게 주도권을 맡긴 채 덜덜 떨고 싶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가족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난리 속에서 꼬맹이는 곰곰히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검은 개를 무서워하지? --> 검은 개가 커다랗기 때문이야. 우리는 작고. --> 우리가 저만큼 커질 수 없다면, 검은 개의 몸집을 줄일 수 있을까? --> 검은 개도 개니까 노는 걸 좋아할 거야. 나랑 놀고 싶으면 몸집을 줄이라고 해보자! --> 혹시 모르니까 달려가면서 해야지. 검은 개도 빠르지만 나도 달리기라면 자신 있으니까!


꼬맹이는 스스로 선택한다. 

검은 개가 와있는 상황은 본인이 만든 게 아니었지만, 검은 개와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계획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꼬맹이는 시나리오를 짰고, 행동에 옮겼고, 다행히 계획은 성공했다. 

계획이 한 번에 성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그 때에도 꼬맹이는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내고 또 한 번 도전했을 것이다. 


예수회 소속 사제이자 신학자인 송봉모는 저서 <광야에 선 인간>을 통해 위기 앞에 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 두 글자가 합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危機)의 때는 전환의 때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갈림길에 서 있는 순간이 바로 위기의 순간이다.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위험을 택한다는 것이요, 보살핌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기회를 택한다는 것이다. 모든 위기는 파국으로 끝나지 않고 기회라는 씨앗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이 진리를 명심한다면 우리는 어떤 절망스런 처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삶일지라도 전환의 기회로 변용시킬 수 있다. (pp. 33-34) 


위험한 순간은 기회의 순간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위기, 전환의 때이다. 

꼬맹이는 다른 가족들의 걱정대로 검은 개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지만 갈림길에서 보살핌의 얼굴을 보았고 기회를 택하였으므로 소중한 반려견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두려움 앞에 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두려움의 크기와 그때 나의 에너지에 따라 바로 선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땐 갈림길 위에 앉아 잠시 울어도 괜찮다. 

한참 울다 고개를 들면 나처럼 울고있는 다른 사람이 보일 수도 있다. 내 등 뒤에서 계속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던 사람을 보게 될 수도, 눈물을 닦아내느라 퉁퉁 불어버린 내 손가락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아마 그때 기운이 조금 날 것이다. 

그러면 일어나 주먹 쥔 손을 펴면 된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주는 거라고,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선택하면 된다. 


어차피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돌릴 수 있다.  

누군가는 검은 개를 하얀 개로 변신시킬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검은 개를 타고 하늘을 나를 지도, 또 다른 누군가는 검은 개에게 몸집 키우는 비법을 배울 지도 모른다. 

모두 자기만의 속도와 색깔에 맞추어, 그렇게 우리는 각자 그리고 함께 수많은 두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는 오늘, 나를 찾아온 검은 개와 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다. 

검은 개가 귀기울여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블랙 독>

레비 핀폴드 지음. 천미나 옮김.  

북스토리아이. 2013. (15쪽)


추천 대상 : 유아 이상   

관련 주제 : 두려움. 용기. 자신감. 지혜. 위기. 기회. 


* 본문에 쓰인 이미지와 직접 인용한 책 속 문구는 Amazon-USA, Amazon-UK, Yes24의 미리보기 & 책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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