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찾아서>
한참 힘들었을 때 신에게 투정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제 좀 그만 힘들어도 되지 않나요?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건가요?"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은 그저 흘렀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원망하며 견디는 것 뿐이었다.
그때 내가 신을 원망할 수 있었던 건 내 몫의 행운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불행을 겪은 후에는 당연히 행운이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운과 불행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얼마만큼의 행운과 얼마만큼의 불행을 어떤 시기에 어떤 강도로 적용할지 결정하는 건 신의 몫이라고 믿었다.
스페인 작가 세르히오 라이를라와 아나 G. 라르티테기가 지은 <행운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에게는 행운과 불행이 공평히 주어지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이름부터 운명적이다.
한 사람의 이름은 '행운 씨',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은 '불운 씨'.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행운 씨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좋은 일들이 일어나 기분이 좋았고 휴가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운 씨는 여행사를 찾아가 적당한 여행지를 추천받고 내일 출발하는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한다.
같은 날 불운 씨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좋지 않은 일들만 이어져 우울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장까지 잃은 상태였다. 누군가 아파트 로비에 흘린 여행안내 책자를 보고 불운 씨는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가방 두 개를 꺼내 짐을 싼다. 예매나 예약은 하지 않는다.
책은 두 사람의 각기 다른 태도가 어떻게 행운과 불운을 불러오는지 보여준다.
행운 씨는 늘 침착하고 느긋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져도, 기차를 놓쳐도, 행운 씨는 태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고 기차를 놓치면 렌터카를 빌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행운 씨에게는 계속 행운이 따라온다.
불운 씨는 늘 안달복달한다.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총알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지만 이미 항공권은 매진됐다. 그래서 렌터카로 출발하지만 어마어마한 교통체증 때문에 차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는 도중 여행가방도 사라진다. 불운 씨는 남들을 욕하고 세상을 욕한다. 이상하게도 불운 씨에게는 계속 불행한 일만 닥친다.
어떤 태도를 견지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이 행운이 될 수도,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이 책이 전달하는 1차 메시지이다. 그러니 매사에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교육적이고 모범적이다.
어린이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인생의 좋은 방향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이가 있는 독자들은 그 너머에 있는 다른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반전과 같은, 글과 그림의 부조화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아래의 글은 그 아래 그림과 함께 제시된다.
아침 일찍부터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려댔습니다. 그렇지만 행운 씨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분히 움직이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지요.
그는 아침을 맛있게 먹은 뒤 짐을 꾸렸습니다. 가장 필요한 몇 가지 조그만 가방에 챙겼어요.
떠나기 전에는 고양이를 돌봐 줄 이웃에게 들렀습니다. 그리고 이웃이 건넨 커피를 천천히 마셨습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어요.
실제로 행운 씨는 아주 느긋한 사람이었거든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은 안다.
같은 브랜드 같은 디자인의 칼을 크기별로 9개나 구매해 일렬로 전시하고 아침식사로 먹을 빵을 원형 식탁에 간격 맞추어 늘어놓는 사람이 결코 "느긋한 사람"일 리 없다는 것을.
본문에서 행운 씨가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일정이 계획에서 어긋나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주 느긋한 사람"이라고 여러 번 강조하는 것도 웃음 포인트이다.
그림책에 나타난 장면들 뒤에서 행운 씨가 얼마나 애쓰고 있을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마치 촬영장 뒷이야기처럼.)
불운 씨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불운 씨가 불운을 불러오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불운 씨는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다. 다만 우연히도 비행기 좌석이 만석이고 우연히도 폭우가 쏟아질 뿐이다.
불운 씨는 그 와중에도 어려움을 이겨내려 노력한다. 어떤 순간들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쯤되면 과연 행운과 불운을 불러오는 것이 삶의 태도가 맞는 걸까 의문하게 된다.
모든 것은 우연이거나 운명이거나 혹은 아무 이유도 논리도 없이 그냥 그런 거니까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행운과 불운을 명확히 나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원망하는 내게 신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건, 신 자신도 행운이 무엇이고 불행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행운을 기다리지만 내가 기다리는 그 행운이 예전에 신을 다그쳤을 때 바라던 것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을 이제는 신도 나도 알고 있다.
더 많은 즐거움:
1. 두 사람의 여행 이야기가 합쳐지는, 책의 정 가운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2. 행운 씨의 여행 이야기에서 불운 씨의 모습을, 불운 씨의 여행 이야기에서 행운 씨의 모습을 찾아내는 재미. 우연히도 두 사람은 계속 같은 장소에 있다. 서로 마주치지는 않지만.
3. 공항과 여행지 등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 리얼하다.
<행운을 찾아서>
세르히오 라이를라 글, 아나 G. 라르티테기 그림, 남진희 옮김.
살림어린이. 2017. (56쪽)
추천 대상 :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
관련 주제 : 행운. 불운. 우연. 운명. 여행. 인생.
* 본문에 쓰인 이미지는 모두 교보문고와 YES24 홈페이지의 미리보기 & 책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