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테오에게>
아홉 살 레아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이다.
레아의 부모님은 레아가 아주 어릴 때 이혼하셨는데 레아는 엄마랑 살면서 주말에는 아빠와 시간을 보낸다.
부모님의 이혼이 레아에게는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에 별로 놀라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분이 어떻게 몇 년이나마 함께 살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야. (p. 11)
테오.
이혼 후 짧은 연애만 하던 아빠가 드디어 정착한 사람이 바로 테오였다.
그리스인 테오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아빠의 예전 여자친구들처럼 레아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았고 아무때나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상한 발음으로 프랑스어를 말하고 혼자만의 독특한 춤을 추는 테오가 레아는 왠지 좋았다. 테오가 들려주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레아는 테오를 만나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레아는 테오가 좋았다.
테오도 레아를 아꼈다.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레아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고민 하나만 빼면.
혹시 엄마가 서운해하거나 질투하는 건 아닐까?
어느날 레아는 엄마에게 그 마음을 터놓는다. 엄마는 잠시 생각하고는 차분히 말했다.
"레아야, 엄마 사랑하지? 외할머니도 사랑하고?"
그야 물론 두 분 다 사랑하지. 그런데 갑자기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나는 네가 엄마를 사랑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또 네가 외할머니를 사랑하는 것도 더없이 기쁘단다. 레아야,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네가 테오를 좋아한다고 해서 엄마에 대한 사랑이 줄어드는 건 아니잖니? 엄마는 네가 테오와 잘 지내서 참 좋단다. 네가 테오 때문에 우울해한다거나 테오가 너한테 못되게 굴면 엄마는 참기 힘들 거야."
멋지지 않아? 엄마 말이 진심이었으면 정말 좋겠어!
어쨌든 덕분에 나는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되었고, 엄마에게 감사했어. (p. 42)
레아 엄마의 말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느껴지는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러면 좀 어떤가.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그저 꿈같아 보이는 대사를 어린이 독자가 들으면 안될 이유가 있는가.
더 나아가, 정말 이런 엄마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혹은, 이 책을 읽은 어린이 독자가 훗날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를 수많은 편견 속에 가두어놓는다.
새엄마는 왠지 나쁠 것 같고 이혼가정의 자녀는 왠지 내내 슬플 것 같다.
실제로 부모의 이혼이 자녀에게 남기는 상처는 매우 클 수 있으며, 문학이 현실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어 그 상처를 함께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반영이라는 명목 하에 편견을 강화하는 건 문제다.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어린이책이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부모의 이혼이 결핍이나 극복해야 하는 핸디캡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그리고'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강의실에서 배빗 콜의 <따로따로 행복하게>를 소개한 적이 있다.
(* <따로따로 행복하게>는 결혼 이후 서로 싸우기만 하느라 점점 얼굴이 사납게 변하는 부모를 위해 자녀들이 직접 '끝혼식'을 열어준다는 내용의 그림책이다. 제목 그대로 끝혼식 이후 부모님은 따로따로 행복해졌고 아이들은 땅굴을 통해 두 집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역시 행복하게 살았다.)
강의가 끝난 후 한 학생이 다가와 "아까 그 책 저 정말 공감했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본인의 부모님도 본인이 어렸을 때 이혼하셨는데, 자기는 이제 더이상 싸우는 걸 보지 않게 되어서 너무나 좋았단다. 주변에서는 부모님이 이혼해서 힘들겠다며 위로를 건넸는데 사실 자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 학생은 자신이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을 이제라도 책에서 볼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모두는 각자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그 경험 모두가 진짜이고, 그때 느꼈던 감정도 전부 진실이라고 말해줄 책이 필요하다. 편견이 아닌 가능성을 열어줄 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책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이럴 땐 이런 법이야'나 '이럴 땐 이렇게 해야돼'가 아니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다정함이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소중하다.
많은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테오에게>를 통해 '이럴 수도 있구나'를 알게 되기 바란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자신과 주위를 둘러볼 때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도.
레아와 테오가 그랬던 것처럼. : )
<사랑하는 테오에게>
안 방탈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김지현 옮김.
큰북작은북. 2007. (80쪽)
추천 대상 :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
관련 주제 : 사랑, 관계, 가족, 이혼, 새엄마,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