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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Jun 11. 2019

내가 가진 작은 희망의 목소리

<당신이 남긴 증오>




















사람들은 "바보처럼 혼자 벽에 기대 서 있는 저 여자애는 누구야?"라는 표정으로 날 흘끔거렸다. 난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쿨한 척 혼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슨에서는 '쿨한 척'을 할 필요가 없다. 거기서는 유일한 흑인인 나를 다들 쿨하다고 여긴다. 가든 하이츠에서의 쿨함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고 그건 당일 풀린 레트로 조던 운동화를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니 그런 척이라도 할 수밖에. - p. 17 중에서 


스타는 열여섯 살 흑인 여자아이이다. 

스타는 흑인들이 사는 빈민가, 가든 하이츠에 산다. 

스타는 중산층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 윌리엄슨 사립 고등학교 학생이기도 하다. 

두 세계에서 스타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흑인이지만 흑인들의 파티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백인들이 가득한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해 모범생으로 보이려 애쓴다. 

스타의 진짜 모습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지만 때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색했던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던 길, 친한 친구 칼릴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일한 목격자인 스타의 삶은 급류에 휩쓸리듯 빠르게 쓸려간다. 

자신이 걸쳐져있는 두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었던 스타. 

가족과 지인들의 보살핌에 용기를 얻어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타는 스스로 두 개의 세상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된다. 

스타의 작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람들이 응답한다. 

가든 하이츠가. 윌리엄슨이. 정의를 바라는 모두가. 


이 책에 흐르는 중심 사건은 Black Lives Matter* 운동이다. 

저자인 앤지 토머스는 2009년, 무장하지 않은 22세 흑인 청년 오스카 그랜트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당신의 남긴 증오>의 시작이 되는 단편을 썼다고 한다. 

당시 토머스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백인 동기들의 얘기였다. 그들은 오스카 그랜트의 과거를 들추며 그가 "죽을 만 했다"고 했다. 

가든 하이츠와 비슷한 동네에서 총격전과 마약 거래를 보며 자라난 토머스는 이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종차별과 불평등, 혐오의 문제였다. 

그러나 토머스는 분노로만 점철된 소설을 쓰고싶지 않았다. 

분노와 더불어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I wanted to make sure I approached it not just in anger, but with love even". - Angie Thomas, from an interview with Clarion-Ledger, 2016 


차별의 피해자, 혐오의 희생자가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바탕에 두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나를 괴롭힌 그 세계에 내가 발을 딛고 서있을 때, 살아남아야 할 때, 매일매일 투쟁하지만 매일매일 무릎 꿇어야 할 때, 분노와 좌절 외에 다른 감정을 갖기란 정말로 쉽지가 않다. 

앤지 토머스는 단편으로 만들었던 이 이야기를 대학 졸업과 함께 덮어두었고, 그 후로 4년동안 열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4년 후 다시 집필을 시작하기까지 정의의 반대편에 있는 저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토머스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을 넘어서는 작은 희망의 목소리는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가까이 귀기울여보면 어느 곳에서든 들을 수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마침내 그 목소리를 찾아냈을 때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에너지를 비축해두면 좋겠다.  

내가 가진 작은 희망의 목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도록. 



*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는 뜻. 미국에서 경찰이 흑인들을 과잉진압하고 사망하게 하고 조직적으로 인종차별과 폭력을 일삼는 것에 반대하며 시작된 운동이다. 

공식 홈페이지: https://blacklivesmatter.com/ 





<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걷는나무. 2018. (460쪽)


추천 대상 : 호흡이 긴 글을 읽어낼 수 있는 중학생과 그 이상 연령  

관련 주제 : 사회 정의, 인종 차별, 공권력, 시민운동, 자아정체감,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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