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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Jun 07. 2019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아이

<우리는 모두 무지개 아이입니다>




도서관 어린이실 신간 코너에 있던 이 책을 당연하게 집어 들었다.

다양한 얼굴로 가득한 표지 디자인과 '무지개'가 들어간 제목.

다양성을 외치는 이 작고 얇은 책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피부색, 인종, 출신 지역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뻔한(?) 내용일 거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첫 줄부터 나의 예상을 비껴갔다.


무지개 시간.
세상으로 여행을 오기 전, 우리는 누구나 무지개 시간을 보낸다. 무지개가 펼쳐진 곳에서 먼 여행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또 선택한다.
누군가는 어려운 일을, 누군가는 쉬운 일을 맡는다. 용기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 일을 선택해야 한다.
누구나, 정말로 누구나 가장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상 세상으로 여행을 시작하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 무지개가 펼쳐진 곳에서 시작된다. (pp. 8-9)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태어나기 전 존재했던 '무지개 시간'이라는 영역에서 내가 선택한 모습이라는 이야기.

지금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내가 더 용기 있는 무지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것.

신선했다.



책은 나오미라는 이름을 가진 무지개 아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나오미가 무지개 시간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나오미가 무지개 시간에 있는 동안 무지개 아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나오미가 무지개 시간을 떠나 세상에 태어난 이후의 이야기.

세 개의 시공간이 적절히 맞물려 있다.


나오미는 조금 달랐다.

특별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마리아와 아더와 빈센트와 줄리아가 발명가, 시인, 화가, 유명인의 꿈을 말하는 동안 나오미는 가만히 무지개 한가운데에 서서 빛을 느꼈다.

주황과 파랑과 노랑이 각기 다른 느낌이라는 걸 나오미는 알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할 수 있는 아이였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도 무지개 시간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나오미는 정말로, 무지개 빛을 느끼며 말했던 것처럼, 자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깨닫도록" 만들었다.

그게 바로, 용기 있는 아이 나오미가 가진 힘이었다.




'하필 나만 왜......', '하필 그때 그런 일이......' 

한도 끝도 없이 원망을 늘어놓던 시기에 읽은 책이었다.

아마 그 시기에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이 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삶을 선택한 건 바로 나 자신이고, 그건 내가 더 용기 있는 무지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것.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무지개 시간에서 나는 분명히 멋진 다짐을 했을 것이다.

내가 세상을 향하여 내딛는 걸음걸음에는 분명히 그때의 빛나는 다짐이 담겨있을 것이다.





[정답이 없는 고민]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인 나오미가 다운증후군 아기라는 걸 책을 절반 이상 읽은 후에야 알았다.

나오미의 아버지가 정확히 그렇게 표현하는 대목이 나온다 - "나오미는 다 운 증 후 군 아기야."(p. 61)라고.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뒤표지를 보니 "다운증후군 나오미와 장애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진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 글에도 "장애 공감 어린이 9권. 다운증후군 나오미와 장애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라고 적혀있다.


만일 내가 이 소개글을 읽고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 똑같은 위로와 감동이 있었을까? 

'장애를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무지개 시간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였군'이라며, 고약하게 비뚤어진 시선으로 책을 읽어나갔을지도 모른다. 하필 그때 나는 엄청나게 꼬여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면 독자들의 더 큰 감동, 반전에서 오는 깨달음을 위해 '다운증후군', '장애 가족', '장애 공감' 등의 문구를 최대한 안 보이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 문구는 이 책의 핵심이자 독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무지개 아이입니다>의 경우, 장애라는 주제는 출판사의 주요 정체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강의실에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할 때 늘 비슷한 고민을 한다.

내가 소개하는 작품은 대부분 훌륭한 메시지를 전할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완성도 있고 재미까지 있는 작품인데, 자칫 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래서 지루한)' 작품으로만 인식될까 봐 늘 조심스럽다.

특정 주제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일단 거부하고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많이 보았다.


좋은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일. 정답이 없는 이 고민을 앞으로도 즐겁게 해나가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무지개 시간에서 생각한 여러 다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무지 아이입니다

에디트 슈라이버 비케 글, 카롤라 홀란트 그림, 유혜자 옮김. 

한울림스페셜. 2019. (96쪽)


추천 대상 :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 

관련 주제 : 장애, 다양성,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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