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원망스럽다

"난 엄마의 소유물이 아니야."

by 한뜰

나의 부모님은 전형적인 꼰대다. 권위적이고 고지식한 조선 시대 유교 사상이 모태신앙처럼 그분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빠는 그야말로 가족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가부장' 그 자체인 분이셨고 엄마는 아빠의 말씀이 법처럼 움직이는 가부장 권력에 투덜대면서도 그대로 따르는 분이셨다.


"옛말에 신체발부 수지부모 라고 했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머리카락부터 모든 신체는 다 부모에게서 난 것이니까 부모 허락 없이는 머리카락 한 올도 함부로 자를 수 없다는 거야. 부모 말을 잘 들으라는 거지."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느니 하는 요즘 애들은 절대 모를 말들을 나는 듣고 자랐다. 아빠가 너무나 권위적이어서 힘들긴 했지만 사실 아빠는 집안일과 육아는 아내의 몫이라 생각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아빠와 대립한 일들은 많지 않다. 내 유년 시절의 전쟁은 거의 엄마와의 갈등으로 일어난 것들이다. 무조건 엄마 말을 따르고 무얼 하든 엄마 마음에 들어야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핀 하나도 엄마의 마음에 들게 꽂아야 했다. 엄마와 나의 취향이나 사고방식이 비슷했다면 그나마 나의 성장이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비슷한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리고 엄마와 다른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도 전혀 엄마에게 존중받거나 인정받은 적이 없다. 엄마에게 자식이란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주니 부모의 소유물인 것이 당연했다. 엄마와 다툴 때마다 항상 엄마가 하신 말씀이 있다.


“엄마가 틀렸다 하더라도 너는 엄마 자식이니까 엄마 말을 들어야지!”


사십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 문장을 쓰는데 여전히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반장 해야지, 1등 해야지, 대회 나가야지, 대표로 나가야지. 끊임없는 엄마의 대리만족 욕구까지 더해져 나의 유년 시절은 그냥 엄마가 나의 몸을 빌려 살았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는 노래나 피아노 연주, 글 쓰는 것, 운동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대회에 나가는 것은 싫었다. 이런 활동을 즐기는 데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에 만족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조금만 잘하면 무엇이든 경쟁으로 끌고 가고자 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바라는 길로 걸어가게끔 가르쳤고, 그렇게 얻는 대리만족에 취해 있었다. 입상을 해오면 언제부턴가 그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기준은 점점 높아졌다. 나는 끊임없이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잘나고 싶어 했고, 반장이 되고 싶어 했고,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런 나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져 너무나 괴로웠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엄마가 바라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여겼고, 괴롭고 힘든 마음은 그저 성취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욕심이 많아서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사러 갔던 그날, 나는 내가 지금까지 엄마의 시선으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부모 자녀들이 교복을 고르고 있던 그곳에서 엄마가 골라주는 대로 입어보고 있던 건 나뿐이었다. 엄마가 골라 준 내 몸보다 조금 큰 교복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서 있던 나와 원하는 대로 몸에 딱 맞는 크기의 교복을 걸치고 내 옆에 서 있던 그 아이. 엄마는 잘 어울린다고 했지만 나도 엄마도 웃고 있지는 않았다. 반대로 거울 앞에선 그 아이와 엄마는 함께 예쁘다 말하며 웃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친구들과 교복을 줄여버렸다.


가끔씩 잠들기 전 나는 어렸을 때의 나를 눈앞으로 불러오곤 한다. 여섯 살, 일곱 살 정도의 어린 나는 작고 말랐지만 통통한 볼살에 눈을 꼭 감고 웃는 모습이 귀여운 아이다. 아파서 입원해 있을 때 아빠가 사오셨다는 곰인형을 안고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실제로 마주한다면 꼭 안아주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넌 정말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인데 내가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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