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잘못했어."
첫째는 갑자기 내가 눈물을 흘리는데도 별로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차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참아내는 것 같아 보였다. 나를 향한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분명 나를 원망하고 경멸하는 눈빛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두려움이 내 심장을 미친듯이 내리쳤다. 더이상 첫째와 나와의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음을, 나로 인해 첫째의 마음과 자존감이 상처투성임을, 그 상처가 너무나 깊어서 그 상처들이 없던 때로 절대 되돌아갈 수 없음을 너무나 확실히 깨달았다. 첫째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고 손을 잡거나 끌어 안거나 하는 어떤 행동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내 자신이 쓰레기 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첫째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나는 아이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맞아.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잘못했어."
내가 더 많이 울고 있었지만 나는 아이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먼저 닦아주었다. 그리고 계속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주었다.
"엄마가 다 잘못했어. 엄마가 너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너의 생각을 물어보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너는 생각하고 말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고, 무엇이든 네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엄마가 기다리고 믿어줬어야 했는데 엄마가 그러지 못했어. 아니, 그러지 않았어.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 뒤로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 첫째에게 계속 사과했다는 것, 하지만 첫째는 그 뒤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다음날 우리는 매우 서먹하고 어색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과장하여 첫째에게 말을 걸었다. "일어났어?"하고 인사하며 아이를 끌어안아주고, 할말이 없어서 그냥 주구장창 사랑 고백을 이어가기로 했다. "엄마가 많이 사랑해. 알지?", "엄마가 정말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다시는 우리 00 마음 다치지 않게, 엄마가 많이 많이 노력할게. 사랑해.", "우리 잘생긴 00, 착한 00, 멋진 00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안아주면 몸을 뒤로 빼고, 손을 잡으려고 하면 쳐내 버리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님께도 연락하여 아이가 힘들어 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첫째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이 하는 행동도 옳은 행동이 아님을,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따돌리는 행위는 잘못된 것임을 피력했다.
무차별적인 나의 사랑 고백을 거부하던 아이는 하루 이틀 지나니 다행히도 나와 마주하는 것이 다시 편안해진 것 같아 보였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천천히 첫째와 좀 더 긴 대화를 시도했다. 너의 입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을, 그게 틀린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야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 마다 아이는 굉장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엄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냥 꼰대같은 말은 그 나이 때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니까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첫째는 이미 사춘기에 진입해서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미간을 찌푸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제 밥 먹자, 라는 말만 꺼내도 짜증이었다. 다른 무슨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그래서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나이를 먹은 만큼 먹은 사람이 자랑이라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다이아까지 찍어본 사람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게임 이야기를 꺼내면 아주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게임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게 되면 금방 몸을 비틀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서서 투덜투덜 불만을 주절주절. 정말 그 모습이 너무 꼴보기가 싫지만 꾹꾹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