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나봐."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창 고무딱지가 다시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전날 할머니에게 받은 용돈 만 원을 들고 첫째 아이는 고무 딱지를 사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가 자기 것도 사고 친구 것도 사줬다길래 그럼 돈이 얼마나 남았냐 물으니 다 썼다고 했다. 분명 그 정도가 아닐 텐데 하고 다시 물으니 아이가 머뭇머뭇하며 친구와 둘이 사러 갔는데 따라온 한 살 위의 형이 자기 것도 사달라고 계속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사줬다고 했다. 그 형이 고른 고무 딱지 하나가 5천 원이 넘는 가격. 친구나 제것 보다도 훨씬 더 비싼 것을 사주고 만 것이다. 그런 것도 거절 못하고 냉큼 사주면 어떡하냐고 아이를 막 다그쳤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이런 엄마였다.
첫째는 타고난 성정이 겁이 많고 유약하며 급하고 내성적인 아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려고 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나와 다른 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고 왜 이 아이는 이럴까, 답답해 하기만 했다. 이런 나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첫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춘기가 찾아왔을 무렵이었다. 아이의 변화에 나는 속만 태웠다. 미디어에서 언뜻 마주했던 사춘기 자녀와 지내는 법을 떠올리며 자극하지 않고 인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사고가 났다.
첫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 거친 남자 아이들의 타겟이 되었다. 운동도 곧잘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첫째는 말투나 행동에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냥 무시해도 되는, 놀림감 삼기 딱 좋은 상대였다. 아이는 농구를 좋아한다. 농구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농구에 진심이기 보다 그냥 할 것 없어 선택한 아이들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장난식으로 농구를 진행하고 아이는 혼자 속이 탈 뿐이었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장난만 치고 몇몇 성격이 센 아이들은 자기가 던지겠다고 공을 다 자기에게만 패스하라 강요하고 나머지는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유치한 진행만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항의하는 아이는 자신 뿐, 나중에는 첫째 아이만 빼고 내편 상대편 할 것 없이 대부분이 그 세력에 합세하여 농구가 아닌 농구공으로 장난만 치는 형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애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니 속상하기만 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따라주는 아이는 없으니 더 속상하고, 선생님이 지도해도 바뀌는 게 없으니 아이는 무력감에 빠져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아이는 외로웠을 것이다. 주위 친구들이라고는 모두 하나 같이 자기 일에만 관심 있고 다른 친구들의 일에는 무관심한 아이들 뿐이었다. 더군다나 집에서도 엄마라는 사람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기 보다 항상 '너는 왜 그래?'라는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니 절대 먼저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게임에만 몰두하며 모든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충동적으로 화를 표출했다. 우울감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 정도로 아이의 모든 행동에 뾰족뾰족 가시가 돋힌 뒤에야 나의 눈에 첫째 아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기꺼이 그 가시들에 찔려가며 어렵게 대화를 시도한 끝에 아이는 이런 일들이 있었음을 털어놓으며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엄마는 무조건 화를 내고 야단치니까 무서워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고. 입이 안 떨어진다고. 마음속으로 나는 말했다.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나봐. 내가 아이를 망가트렸어. 내가 내 귀한 자식을 다치게 했어.'
그날 나는 첫째 아이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