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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n 20. 2022

행복과 고단이 비례하는 토요 육아


무기력에게 지배당했지만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던 날이었다.


남편은 상사의 부름에 일찍 나가고, 아이 둘과 남겨진 나는 맥없이 축 늘어만 지고 싶은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착잡했다. 아이 둘이 많이 컸다고 해도 손은 많이 갔다. 씻기고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공부까지 시키면 나만의 시간은 없을 게 뻔했다. 게다가 오늘은 한 달에 한번 허리와 배가 괴로운 일주일의 시작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만 백번쯤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이들은 책도 잘 읽고, 잘 먹고, 둘이서 잘 놀고, 몇 번을 싸우기도 하고, 춤도 추면서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책도 읽고 싶고, 잘 먹고 싶고, 놀고도 싶고.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건데 엄마는 왜 아이들과 거리두기가 필요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과 고단이 비례함을 매일 느낀다. 사랑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까지 포함해서 고단함이 밀려온다. 나에게 육아는 나를 지우고 아이들로 세상이 가득 차는 것이었다. 모든 게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을 끔찍이도 아끼는 마음과 때때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나와 살 비비고, 얼굴 맞추고, 눈 맞추고, 입 맞추고 싶어 하는데. 나는 틈만 나면 방 한구석에 앉아 혼자의 사색에 잠겼다. 그 시간도 잠시. 1분, 2분 지나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엄마 뭐해?" 하며 달려온다. 거부할 수 없이 어여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애써 힘을 내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며 집안일도 틈틈이 하다 보면 금방 저녁시간이다. 남편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며 옷만 갈아입고 야속하게 다시 나가버렸다.

그때까지 제대로 먹지 못한 나는 라면을 끓여달라는 아이의 외침을 뒤로하고 피자 한판을 주문했다. 피자 한 조각만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피자 한 조각 위에 오늘의 온갖 힘듦을 올려 한입에 꿀꺽 먹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피자 세 조각을 입에 욱여넣고도 1분마다 나를 부르는 아이들에 도저히 정신이 들지 않았다.




여차저차 늦은 밤 겨우 아이들을 재우고서야 내 시간이 생긴다. 위스키 한잔 진저에일과 섞어 하이볼을 만들어 놓고 드라마를 틀어본다. 그러면서 내 손은 냄비 안의 미역을 열심히 볶았다. 오늘 그렇게 온몸으로 고단을 받아놓고 내일 밥 걱정까지 벌써 하고 있다. 엄마에게 아이들 밥이란 절대적 중요 1순위라 어쩔 수가 없다.


조용한 새벽 시끄러운 문소리를 내며 귀가 한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술주정을 늘어놓는다.

"자기야, 내가 공부할 것이 생겼어! 주광색과 주백색의 차이가 뭔지 알아?"


뭔 소린가. 정말.

직장 상사분과 형광등 얘기를 하다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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