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선 Jul 07. 2022

반성문과 도토리묵

8살이 요리로 건네는 위로


"디지게 혼난 거, 엄마한테 디지게 혼난 거 너무 안 좋았어!"


잠자기 전, 우리는 각자 하루의 좋았던 점과 안 좋았던 점을 이야기한다. 첫째 아이는 하루 중 20%는 좋았고 80%는 안 좋았다고 했다. 그중 80%는 엄마한테 혼나고 반성문을 쓴 것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고.



그렇다. 오늘 큰소리로 아이를 혼냈다.

학원이 끝난 아이는 학원 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학원이 끝난 지 1시간이 넘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이의 친구도 역시나 받지 않았다. '그래. 어디서 놀고 있겠지.'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아직 1학년인 아이가, 내 품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작고 소중한 나의 아이가 혹시나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 걱정이 앞섰다.

나는 결국 아픈 둘째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서 전화를 다시 한번 걸어봤지만 첫째 아이는 받지 않았다. 혼자서 머릿속으로 엄청난 상상과 걱정을 안고 아파트 입구 앞까지 나갔다.


어휴, 화가 난다.

바로 앞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그때 다시 전화를 거니 멀리서 전화를 받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왜?"

"너 왜 전화 안 받아. 빨리 와."

"알겠어. 화 안 낼 거지?"


집으로 돌아와서 엄청나게도 혼을 냈다. 아이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들이 쓴 반성문. 반성문 맞다. 8살의 반성문.^^


아이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 정도. 마음이 여린 아이라 엄마에게 혼난 것만으로 속상했을 텐데,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이 몹시도 마음이 아팠나 보다.

툭 건드리면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로 나에게 반성문을 내밀었다.

"그래, 밥 먹자."

나는 한 번을 안아주지 않고 말했다. 아이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8살 아이가 학교 방과 후 쿠킹 수업에서 만든 도토리묵무침


그날 나의 저녁은 첫째 아이가 학교 방과 후 쿠킹 수업에서 만들어 온 도토리묵무침이었다.


그렇게 혼난 아이는 내가 자신이 만든 도토리묵을 저녁으로 먹겠다고 하자 얼굴이 피기 시작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꼬리가 살짝씩 올라가더니 결국은 저녁시간 내내 웃으며 재잘거렸다.


"엄마 이거 빨간 거 뭔지 알아? 이거는 피를 만들어준대. 그래서 빨갛대. 내가 상추랑 깻잎도 넣었어. 엄마 좋아해? 그거 파프리카야! 맛있어? 엄마 내가 잘 만들었지? 엄마 맛있게 먹으라고 만든 거야. 양념장도 내가 다 만든 거다? 엄마 매울까 봐 고춧가루는 한 스푼만 넣었어. 꽃 모양도 내가 모양 찍는 걸로 찍어서 다 만든 거야. 잘했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아들이라니. 마치 내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나의 모습과도 같았다.


"엄마 내가 계란도 프라이팬에 한 거야. 되게 쉬워! 기름을 칙칙 뿌리고, 계란을 톡톡 해서 그릇에 넣고, 막 휘저은 다음 프라이팬에 넣고 가만히 기다렸다가 뒤집개로 탁 뒤집으면 끝이야! 쉽지?"


"진짜? 엄청 잘했네. 너무 맛있다. 양념도 진짜 맛있고. 세준이 프라이팬 안 뜨거웠어? 어떻게 이렇게 잘했지?"


"아 그거? 기다란 팔 보호대 하고, 장갑도 끼고 하면 괜찮아! 엄마 계란도 맛있어? 내가 진짜 잘 만들었지?"


내가 한마디 하면 아이는 열 마디를 하며 신나 했다. 양념장 만드는 방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주고, 계란 지단 만드는 방법, 재료는 무엇이 들어갔는지 하나하나 나열했다. 혼난 건 까맣게 잊었다는 듯이 식사시간 내내 웃고 또 웃었다.


아이는 누군가를 먹인다는 기쁨을 안다. 재료를 정성스레 손질하고 요리한 음식을 누군가가 먹는다는 것.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 내 정성을 알아준다는 기쁨과 행복. 이제 8살인 아이가 그 행복을 안다. 아이는 요리만 배워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배워왔다.


그 사랑으로 혼내기만 했던 나를 덮어 주었다. 고작 전화를 받지 않고 집에 일찍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그치고 반성문을 쓰게 한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도토리묵에 나는 작아졌다.

도토리묵을 먹으며 아이를 향했던 나의 언성을 곱씹었다. 아이를 냉정하게 혼낸 나를 아이는 도리어 요리로 위로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자기 전 하루  80%는 혼나서 좋지 않았고, 20%는 좋았다고 했다. 역시나 20%는 자기가 만든 요리를 엄마가 맛있게 먹어줬다는 것.

아이는 혼난 이후로 한 번을 안아주지 않았다며 빨리 안아달라고 재촉했다. 우리는 침대에서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나를, 나는 아이를. 서로를 안고 사랑한다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과 고단이 비례하는 토요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