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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Aug 15. 2022

엄마는 오늘도 너에게 미안해서




엄마라는 호칭을 갖게 되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아기가 태어나서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게 된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땐 인스턴트를 먹는 죄책감에, 아기가 태어나 울기 시작하면 빠르게 분유를 타면서 혹은 아기에게 달려가며 미안하다 하기도 한다. 아기가 아플 땐 말도 못 한다. 모든 게 엄마의 탓인 양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반복해서 말하며 머릿속으로 엄마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곱씹기도 한다.

그밖에 조금만 상처가 나도, 음식을 먹다가 사레가 들려도, 엄마는 옆에서 잘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가지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도 아이의 예방접종 주사를 한꺼번에 두 개나 맞혀야 할 때, 내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넘어져서 상처가 났을 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아이가 견뎌야 할 아픔이 너무 크고 안쓰러워서, 혹은 '내가 제대로 잡아줬다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와 아이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다. 그저 미안한. 세상 모든 아픈 건 겪게 하고 싶지 않고 행복만 알게 하고 싶은 마음.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맛있는 거 먹으며 편안한 환경에서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도서관에 만화책 보는 딸. 모든 게 다 예쁠 나이~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키가 커지고 얼굴이 커질수록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이는 한 살 한 살 커가면서 내 말을 안 듣기 시작하고, 말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은 생각이 커간다는 의미가 있지만 막상 아이의 말대답을 경험하면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다.


우리 집에서는 "왜 꼭 그래야 돼?"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양치하라는 말에도, 목욕하라는 말에도, 똑바로 앉아야 한다는 말에도. 올해 8살이 된 아들은 "왜 꼭 지금 그렇게 해야 해?"라며 반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입안에 세균이 생기고, 밖에 나갔다 오면 씻어야 하는 것이고, 바른 자세로 앉아야 나중에 허리가 아프지 않는다고. 10번 넘게 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

책 좀 갖다 달라는 말에도, 과자를 사달라는 말에도 우리는(남편과 나) 아이에게 "왜 꼭 그래야 돼?" 하며 반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처음에 이유를 이것저것 갖다 붙이며 해달라고 조른다. 우리는 곧 며칠의 답답함을 경험한 아이의 한숨을 듣게 되었다. 그 뒤로 아이도, 우리도 반문하는 것을 줄여나갔다.


이렇게 생각이 커가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넘어져서 아프다고 해도 잘 보고 다녀야 한다며 걷거나 뛸 때는 앞을 똑바로 보고 다녀야 하는 거라고 가르쳤다. 예방주사는 아파도 튼튼해지려면 참아야 하는 거라며 미안하다는 말 대신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다 자라 어른이 되면 다시 미안해지는 걸까. 나의 엄마가 35살인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땐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을까. 너무 어렸을 때여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우리 엄마는 다 커서 아이도 둘씩이나 낳은 딸에게 갑자기 뭐가 미안했던 걸까.




엄마는 오은영 박사님의 부모 십계명을 캡처해서 나에게 보냈다. 부모 십계명을 읽으며 나를 키울 때가 생각이 났는지 반성한다며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엄마의 반성과 사과는 자책이었다. 좀 더 잘해줬더라면, 사랑해줬더라면 하는 자책.

하지만 난 이렇게도 잘 컸고 엄마는 자식에게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엄마의 사과는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뭐가 미안해. 나 이렇게 잘 커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엄마는 원래 자식에게 미안한 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갓난아기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엄마이지 않나.

나 또한 매일 아이에게 미안하다. 화를 내게 되면 대부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편인데 그밖에 사소한 일에는 차마 미안하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다신 아이를 몰아세우지 말자고 다짐하곤 한다.




태권도 가는 아들. 우산 똑바로 들자고 해도 절대 말을 안 듣는다..



오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학교 방학이라 오전에 태권도에서 하는 줄넘기 특강을 다녀온 아들. 아이는 오늘 드디어 9급에 통과했다며 이제 8급이라고 신나 했다.

"엄마! 내가 9급 통과했어! 내가 드디어 8급이라니. 우와. 내가 오늘 한 번밖에 안 걸려서 통과한 거야. 진짜 다행이지? 저번엔 몇 번을 걸렸는데 오늘! 드디어! 통과했어! 나 이제 8급이야!"


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근데 9급을 통과했으니 9급이 된 거 아니야? 왜 품띠도 품띠를 따서 품띠가 된 거잖아. 그러니까 줄넘기도 9급을 통과해서 9급인 거 아닌가? 8급은 이제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찬물을 끼얹었다.

몇 번의 말씨름 끝에 아이는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 미워! 내가 9급 하느라고 얼마나 열심히 줄넘기했는데! 왜 내 말이 아니라 그래! 이제 8급인데! 자꾸 9급이라고 하고. 진짜 미워!"


웬만하면.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안아주면 기분이 풀리는 아이다.

오늘만큼은 엄마 저리 가라고 했다. 뽀뽀도 소용없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은 턱끝까지 내려와 맺히고, 몸은 나를 등지고, 어깨는 억울함이 가득한 채로 들썩거렸다.


그래. 미안하다. 엄마가 네 맘을 몰라도 너무 몰라줬네. 진짜 미안해.

(하지만 줄넘기 급수 문제는 사범님께 다시 물어볼 거야.)

(진짜 잘 몰라서. 확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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