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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Aug 28. 2022

육아는 내가 죽는 날까지

  

와, 너 다 키웠네. 진짜 부럽다.




6개월 만에 만난 친구는 나에게 연신 부럽다고 했다.

나의 아이들은 8살, 6살. 친구의 아이들은 6살, 3살이다. 몇 살 차이 안나는 아이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맘때 아이들은 몇 개월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둘째가 3살인 친구는 언제 너처럼 키우냐며 나의 말끝마다 부럽다는 말을 붙였다.


대화의 패턴은 반복됐다. 8살 첫째 아이가 혼자서 학교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말에도, 혼자 목욕을 할 수 있다는 말에도, 재워주지 않고 남매 둘이서 잔다는 말에도 친구는 감탄을 쏟아냈다.

그럴 만 하긴 했다. 친구에겐 한참 키워야 할 3살 둘째가 있었으니까. 어린이집도 안 가서 하루 종일 집에 끼고 있는 둘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친구의 표정은 암울했다. 말도 잘 못하고 기저귀도 못 뗀 어린아이를 키워내는 과정과 그 힘듦을 알고 있기에 쉽사리 위로를 전하지 못했다.




8살의 학교 가는 길. 뒤따라 가는 날도 있다. 엄마는 학교 가는 길이 궁금해!




하지만 내가 정말 다 키운 건 아니다. 아이는 아직 8살일 뿐이다. 육아의 길이 앞으로 구만리다.

주변 말을 들어보면 둘째가 6살은 되어야 편하다는 사람, 아이 둘 다 학교에 다녀야 편해진다는 사람, 사춘기가 오면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사람, 차라리 아기 때가 편한 거라던 사람 등 제각각이다. 육아가 편해지는 순간을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육아 선배'의 입장에서 한 마디씩 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때가 제일 편할 때다'라고 말하던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나의 고충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미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너무 힘든 나에게 지금이 제일 편한 거라니 무슨 소린가.

그런데 첫째가 8살이 된 지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점점 육아가 어려워진다. 몸은 편해지는데 또 다른 정신적 힘듦이 찾아들었다.




"맞았다고 해줘!! 거의 맞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문제를 잘 읽지 않아 정답 칸에는 다르게 썼으니까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어. 다음에 잘 보고 쓰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마음이 여린 우리 집 8살은 거의 매일 한 번씩 울음을 터트린다. 열심히 푼 수학 문제에 답을 잘못 썼는데 엄마가 틀렸다고 하자 억울함이 밀려왔나 보다. 틀린 걸 틀렸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울 일인가.


"틀려도 괜찮은 거야. 매번 다 맞을 순 없지. 틀릴 수도 있는 거지. 이번에 틀렸기 때문에 문제를 잘 읽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잖아. 한 번도 안 틀려 본 사람은 그런 것을 배울 수도 없는데, 넌 이번에 틀려서 한 가지 배울 수 있던 거야."


감정 짚어주고, 위로해주고, 설득해서 달래고.. 여러 번 다독인 끝에 울음을 멈췄다. 아기 땐 번쩍 안아 들고 몇 번 토닥여주기만 하면 됐었는데. 울음 그치게 하기 참 어려워졌다.



물론 아기가 어릴수록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다. 오죽하면 '육아는 엄마(그리고 아빠)의 뼈를 갈아 넣어 키우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육아는 끝이 없다. 내가 아기를 낳아 시작해 눈감고 죽는 날까지 하는 것이다. 아기 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케어해야 한다는 고충이, 조금 크면 기본적인 인간의 소양을 갖춰줘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자식이 어른이 됐어도 풀리지 않는 갈등과 힘든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육아이고 또한 가족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육아로 8년이 흘렀다. 육아가 끝나려면 60년 정도는 더 남았을 것이다. 아이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육아가 시작된다. 오늘의 육아는 나도 처음이니 매 순간 초보일 수밖에 없다. 평생 초보 엄마로 내가 죽는 날까지 육아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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