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선 Sep 28. 2022

겪어보니 화가 나는 8살의 '왜?'라는 물음



8살. 아이는 나의 눈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1학기 땐 나와 등교하고 하교 때 데리러 나갔다면 지금은 혼자 등교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하교를 한다. 엄마의 눈에서 벗어나는 만큼 친구들과의 비밀이 생기는 걸까. 별것도 아닌 걸 숨기는 8살이 되어 버렸다.


"엄마! 오늘은 학교 끝나고 집에 들렀다가 피아노 갈게!"

"그래 집에서 기다릴게 끝나고 와~"




하교시간. 집과 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다. 2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준아, 어디야?"

".... 왜?"

"집에 온다면서 안 오니까 그렇지. 어딘데?"

"... 꼭 말해야 돼?"

"아니, 그냥 어딘지 물어보는 거잖아. 어디냐고."

"아... 그냥 있어. 왜."


답답할 노릇이었다. 대답을 해야 그다음 대화를 이어갈 텐데. 어째서 어딘지조차 말하지 않는 걸까. 딱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네가 집에 들렀다가 학원 간다고 했는데 안 오니까 어딘지 물어본 것뿐이야. 친구랑 있어?"

".. 응. 엄마~ 나 그냥 집 안 들리고 시간 맞춰 바로 학원 가면 안돼?"

"되지. 근데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야. 전화도 안 하고 집에 오지도 않으면 어떻게 해."

"알겠어..."

"시간 잘 보고 학원 가~"

"응. 끊어."



보통 '왜?'라고 물어보는 시기는 호기심이 생겨나는 4~7세라고 들었다. 8살의 '왜?'는 무언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왜?'가 아니라 본인의 행동을 숨기고 싶거나 불만이 있을 때 나온다. 처음 '왜?'라는 반문을 들었을 땐 화도 나고 짜증도 났는데 몇 번 듣다 보니 이것도 내성이 생겼는지 '하.. 또 저러네.'하고 생각해버린다.


아이에겐 대답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일상이 어딘가에 있나 보다. 보이지 않는 아이의 일부분을 사생활이라 생각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건지, 아직 8살일 뿐이니 적극 개입을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엄마 인생 8년 차에 이렇게 반문을 받는 시기는 처음이라.


 


아이의 '왜'는 집에서도 불쑥 튀어나온다. 얼른 양치하자는 말에도 대뜸 "아.. 왜.."라며 낮은 목소리로 한껏 불만을 표현했다. 차오르는 화를 누르며 시간이 늦었고, 내일 학교 가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니 양치부터 하자고 설명했다. 나의 말은 잔소리로 둔갑해 아이에게 쏟아지고, 아이는 "알겠어! 이것만 하고!!"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다급히 내 말을 막는다.


아이의 '왜?'는 나의 물음에 방어적 태도를 한마디로 대변한다. 벌써부터 내 말이 아이에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 말투와 높낮이에도 예민한 아이라 최대한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 중인데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건가 싶어 머리가 아다.




그날 저녁, 아이는 학교에서 쓰는 그림일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도 오늘은 일기를 쓸 거라고 말했다.


"네가 자꾸 엄마한테 '왜?"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써야지~"

"아!!!! 아니~~ 쓰지 마~~~!!!!"


아이는 당황스러운 듯 절대 쓰지 말라며 웃어 보였다.


"너는 꼭 엄마한테 숨기고 싶은 게 있을 때 '왜?'라고 하더라~?"


아이는 마구 웃었다. 본인의 마음을 들켜서 부끄러웠나. 아이는 하교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 있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게임하는 것을 구경했다고. 자기는 데이터를 다 써서 게임도 못하고 옆에 앉아있기만 했다면서.

그래도 웃으며 잘 타일러 약속을 받아냈다. 학교 끝나고 꼭 전화하기. '왜?'라는 말 하지 않고 대답 잘해보기. 약속은 잘 지키는 아이지만 잘 까먹는 편이라 걱정이 된다. 그래도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는 내가 죽는 날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