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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Nov 24. 2022

오늘도 식탁 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흘리는 자, 누구인가



오늘도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무릎을 꿇고 왼손으로는 바닥을 짚었다. 그리곤 오른손에 들린 물티슈로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쓸었다. 아이들의 의자 밑엔 먹다 흘린 밥풀과 과자 부스러기, 그리고 몇 개의 사과 조각까지. 떨어 음식을 열심히도 주워 담는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식탁 아래 여기저기 닦고 또 닦았다.




아이를 낳고 생활에 달라짐이 있냐고 물어보면 당연 '모든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머리스타일, 취미, 직업, 그리고 얼굴 표정까지. 모든 걸 한순간에 바꿔버린 출산. 생활의 변화에 무엇하나 좋은 점은 없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는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먹지 못할지언정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도 먹였다. 이유식부터 유아식, 지금 밥과 반찬을 잘 먹기까지 세지도 못할 만큼의 밥과 간식을 가져다 열심히 먹였다. 이유식은 턱을 타고 바닥까지 흐르고, 유아식은 식탁과 옷에 덕지덕지. 나는 육아의 시작과 동시에 식탁 밑을 기어 다닐 운명으로 정해졌다. 다 식어빠진 밥과 아이들이 남긴 반찬을 주워 먹고 또 식탁 밑으로 들어간다. 내 단짝 물티슈와 함께.




아이들만은 따뜻한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혼자 숟가락으로 밥을 잘 떠먹는 시기를 지나 젓가락으로도 밥을 먹는다. 김까지 젓가락으로 집어 밥을 야무지게 싸 먹는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 밥을 먹는 동안 많은 것을 흘린다. 반찬도 흘리고, 과일도 떨어트리고. 과자를 먹으면 입 주변과 손에 묻히며 부스러기를 온 사방에 뿌려 놓는다.


"흘리지 말고 먹어."

식탁에서 하는 나의 단골 멘트다. 아이들은 턱을 그릇 쪽으로 바짝 붙이고 흘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다가도 눈이 오른쪽으로, 뒤로 돌아가면서 얼굴도 함께 돌아간다. 입으로 들어가려던 몇 개의 밥알이 미처 동료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밑으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아. 주워야 할 밥풀들이 늘어가고 내 무릎이 고통받는 시간도 늘어간다.


아이들과의 식사는 정신이 하나 없다. 계속 흘리며 먹진 않는지, 골고루 먹고 있는지, 장난치지는 않는지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작 나는 밥을 먹는 건지 그저 입에 넣고 씹고만 있는 건지 모른다. 눈은 아이들만 보고 있고 오른손에 들려진 젓가락은 대충대충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다 후드득.


"엄마! 엄마도 다 흘리면서 먹네!!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고!"

아뿔싸. 어른이란 자고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어차피 엄마가 다 치울 거야. 너네가 흘린 거 너네가 치우고 닦을 거야?"

괜히 찔리는 마음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멘트로 아이들의 말을 가로막는다. 아이들은 그건 아니라며 엄마의 실수에 즐거운 듯 낄낄거리며 밥을 먹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급격하게 생각이 자란 아이는 제법 잘잘못을 잘 가려낸다. '엄마가 다친 것은 동생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던가, '난 잘못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화를 낸 것이다' 라던가. 나도 엄마가 처음인 사람이라 때로 실수할 수 있다. 엄마라는 위치에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넘어갔던 부분이 많은데 이젠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 흘릴 수 있지. 나도 흘릴 수도 있고 너희도 흘릴 수도 있지. 흘린 건 또 주우면 되지. 맘 같아선 똑바로 먹으라고 한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참는다. 대신 함께 흘리지 않도록 노력해보자는 말로 바꿔 말해본다.



오늘도 오른손에 물티슈 한 장을 들고 식탁 밑에서 무릎 꿇는다. 아이를 낳은 후 시큰거리는 무릎. 그 무릎을 바닥에 대고 이쪽저쪽 열심히도 닦는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이들과 우아하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땐 무릎 꿇지 않으리. 잔소리하지 않고 미소 짓는 엄마가 되어 있으리라 작은 소망을 품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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