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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Aug 22. 2022

영원히 비밀에 묻힐 나의 브런치

부캐 있으세요? 제 부캐는 브런치작가입니다.



"나 브런치라는 곳에 작가가 되어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



많은 고민을 하다가 친구 A에게 털어놓았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주변에 알린다면 제일 한 친구인 A에게 먼저 말해야 할것 같았다.

A는 자신이 글을 정말 못쓴다며 자신 없어하던 친구라서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까. 그래도 축하해주지 않을까. 어떻게 말을 꺼내봐야 할까.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구인데 나중에 말하는 것보단 먼저 말하는 게 낫겠지.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A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아, 그래? 잘됐네!"

끝이었다. A는 관심조차 없었다.

브런치라는 곳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브런치 어플을 다운로드하면 내 주소를 알려준다고 했지만 그 뒤로 A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마침 오랜만에 전화 온 A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이번엔 주소를 꼭 보내달라고 했다. 빠르게 카카오톡으로 주소를 보내주었다. 내 글을 직접 누군가에게 보내주다니. 느낌이 새로웠다. A가 무슨 말을 할지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A는 작가명을 왜 실명으로 했냐며 글에 대한 얘기 대신 내 이름 얘기만 늘어놓았다.


그다음 전화에서 나는 확신했다. A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친구구나. 그때 보내준 글을 아직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 메인에 두 번째로 글이 올라간 소식을 전했을 땐 다음 관계자와 아는 사이 아니냐고 물어왔다. 어떤 글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던 A의 태도에 서둘러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당혹스러움? 황당함? 실망감?


A와 나는 일주일에 5번은 통화하던 사이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18년째 친구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시기에 겪은 결혼과 육아의 영향이 컸다. A의 얼굴을 보는 건 일 년에 한두 번이 전부였지만 거의 매일 A의 목소리를 들으며 육아 스트레스를 덜어냈었다.


A에게 브런치 얘기를 하던 날 느꼈던 당황과 실망. A의 축하를 당연하게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많은걸 바란 건 아닌데. 진심 어린 축하와 가끔 내 글의 독자가 되어주길 바랐을 뿐인데. 그 뒤로 친구와의 전화통화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한 달에 한 번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나에게는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 특별한 경험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림을 받은 날엔 남편과 소박한 축하파티를 하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는 기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이렇게 특별하고 기쁜 일을 모든 지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적은 구독자수(글 발행 초반)에 무시받을까 봐.

'어쩌라고?' 무관심일까 봐.

내 글을 대놓고 소개하기 부끄러워서.


자신이 없다. 내가 자신이 없는 건지. 내 글이 자신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구독자가 10명이 되면 공개할까? 30명이 되면 공개할까? 고민했다. 공개하는 순간도 상상해봤다. 그러다가 A의 반응을 보고 결심했다. 비밀로 해야지.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친구들조차도 특별하게 나를 관심 있게 보지 않는다.

내 브런치 작가명은 성을 뺀 이름. 실명 그대로다. 사진은 내 뒷모습. 누가 봐도 나. 대충 봐도 나.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지도. 브런치 작가인지도.


브런치 작가는 아무도 모르는 내 부캐다.

나는 그저 평범한 주부. 아이 둘 키우고 집안일에 전념하는 주부. 아침이면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집에서 나오지 않는 동네 아줌마. 애들과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나는 그냥 애엄마.


나는 컴퓨터 앞에서, 브런치 안에서 작가가 된다.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물을 한 컵 옆에 놓고 글을 쓴다. 내 안에 부캐를 꺼내놓고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지금까지처럼 들키지 않고 계속 글을 쓰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브런치 작가는 내 부캐. 영원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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