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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Sep 14. 2022

엄마의 애호박전이 없어서 울었다

서글픈 명절의 마지막 날



추석 연휴 동안 시댁과 친정에 다녀왔다. 보성과 용인을 찍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며 명절 미션을 완수한 서로 칭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편했다. 멀리 계셔 아이들을 잘 만나지 못하는 시부모님과 시할머니는 우리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셨고, 우리는 커다란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마음만은 편하게 집안일 무한의 굴레로 들어왔다. 차 트렁크에 가득 쌓인 짐을 집으로 올려 늘여놓으니 거실 한편이 네 식구의 빨래와 먹을거리로 가득 찼다. 연휴 첫날 짐 싼다고 나풀거리며 돌아다닌 탓에 바닥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방치되어 있었고, 건조기엔 빨래가 그대로, 거실엔 해야 할 빨래가 산더미였다.

부모님들이 살뜰히 챙겨주신 먹을거리도 넘쳐났다. 각종 김치부터 과일, 전, 생선과 아이들이 미처 다 먹지 못한 과자들까지. 많은 양에 정리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가득 찬 냉장고는 든든했다.




연휴 마지막 날, 수많은 빨래를 해치우고 나태하게 늘어져 있던 늦은 오후. 취미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의 도어록 소리를 알람으로 벌떡 일어났다. 나도, 아이들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만큼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급하게 가스불을 켜고 고기를 구웠다. 구워진 고기들은 아이들과 남편의 입으로 쏙쏙 잘도 들어갔다. 아무래도 나까지 고기를 먹기엔 양이 부족다. 어젯밤 냉장고에 넣어둔 전이 생각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호박전. 엄마와 아빠가 아침부터 기름 튀기며 만들었을 애호박전.


냉장고 안 비닐봉지에 여 있는 전 뭉치를 꺼냈다. 아, 호박전이 아니네. 어머님의 전이네.  

어머님의 전은 한우 육전.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을 안다. 그러나 왜 호박전이 아닌가. 난 지금 호박전이 필요했다. 뒤를 돌아 식탁을 보니 고기는 거의 사라지고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울컥하는 눈꺼풀에 힘을 주고 육전을 프라이팬에 데웠다.


눈물이 났던 건 호박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절 내내 누군가를 위해서만 존재했던 내 모습을 애호박전에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이자 며느리로, 아이들의 엄마로의 역할만 해야 했던 명절 기간. 그 기간 동안 진정 배려받았던 순간은 친정에서 애호박전을 먹을 때였다.




남편도 아이들도 애호박을 먹지 않는다. 편식을 하는 남편의 입맛을 쏙 빼닮아 아무도 애호박을 먹지 않는 우리 집. 가끔 아이들의 볶음밥에 잘게 다져 넣어주는 정도라 장 볼 때도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구매해 요리까지 하기엔 아깝고 귀찮은 마음이다.


그런 애호박은 명절날 친정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오직 딸만을 위해 만들어진 애호박전. 엄마가 적당한 두께로 썰어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에 담그면 아빤 연두색 동그란 애호박전을 정성스레 부쳤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애호박전이 먹고 싶었다. 시댁에서 올라온 우리의 차 트렁크는 이미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엄마는 우리의 손이 무거울까 약간의 음식만 더던 것이. 하필 애호박전을 빼고서.





애호박전 하나로 이토록 서글퍼지다니. 남편이 들으면 황당한 표정으로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원래 음식으로 서운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면 서럽도록 가슴에 오래 남는 법이다.

나만을 위한 것이 필요했다. 명절 내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써의 역할을 다나에게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를 위한 보상은 애호박전. 명절 연휴 다음날 혼자서라도 부쳐본다.



혼자 부쳐본 엉성한 애호박전



마침 집에는 먹다만 애호박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애호박을 적당한 두께로 썰어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 튀김가루 두 스푼을 넣고 흔들었다. 부침가루나 밀가루가 없을 땐 튀김가루도 좋다. 계란 두 알을 깨고 휘휘 저어 애호박을 퐁당퐁당 넣는다. 계란물에 푹 담가진 애호박은 프라이팬 위에서 기분 좋게 익어갔다.


분명 우린 명절 미션을 끝내고 마음만은 편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몸과 마음 모두 어딘가 고장 난 느낌이다. 명절 내내 붙잡고 있던 미묘한 불평들은 명절이 끝난 후 내 속을 비집고 나와 기어코 머리를 꺼낸다. 반드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쉬어 가야 한다.


네 식구의 남은 짐 정리를 잠시 미뤄두고 애호박전을 먹어본다. 우리 집에선 아무도 안 먹으니 혼자서 천천히. 여유 있게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실 것이다. 어질러진 거실은 쳐다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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