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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Sep 07. 2022

택시를 타고서 부산여행



이번 여름 휴가지는 부산. 기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그저 기차를 탄다는 사실만으로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높이 들고 펄쩍펄쩍 뛰었다. 바다에도 갈 거라고 말해주니 반짝거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래 있어? 바다에 들어갈 거야? 상어는 없겠지?" 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우리는 바빴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세운 채로 여행 짐 목록을 작성하고 짐을 싸며 체크했고, 남편은 숙소 주변의 맛집과 돌아볼 여행지를 검색했다. 아이들의 할 일은 신나 하기. 기대하고 즐거워하기도 바쁜 아이들은 여행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흔들어 깨웠다. 휴. 우리 기차는 오후라니까.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달려 부산역에 도착했다. 캐리어 하나를 끌고 어깨에 메는 여행가방 하나, 배낭 하나를 메고서 부산역 옆쪽에 길게 늘어선 택시 줄 맨 앞으로 걸어갔다. 택시에 오르자 기사님은 "안녕하세요!" 하며 기운 좋게 인사하셨다.


우리가 부산에 머무는 동안 이용할 숙소는 그린나래 호텔. 해운대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인데 군 전용 숙소다. 남편이 군인이라 운 좋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택시기사님은 그곳에도 호텔이 있냐며 의아해하셨다. 호텔 이야기로 터진 대화는 목적지에 가는 40분 동안 계속되었다. 사실 나는 내향형이라 기사님이 친절하게 걸어주시는 대화가 불편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 기사님은 어쩐지 약간 신나 보였다.




대화 주제는 호텔에 이어 식당 소개로 넘어갔다. 회는 다른 데 가지 말고 민락회센터를 가라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추천하셨고, 아이들이 있으니 아무 데나 갈 순 없다며 몇 개의 식당을 추천셨다.(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열심히 추천해주셨는데..)

그 외 아이들과 함께 갈만한 여행지로 아쿠아리움과 용궁사도 추천해주셨다. 이쯤 되니 보였다. 기사님의 부산 소개에 대한 진심이. 멀리서 부산까지 여행 온 우리에게 기사님은 진심을 다해 여기저기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기사님은 2박 3일의 여행 일정까지 짜주셨다. 둘째 날 낮엔 어디를 가고 저녁엔 그 근처에서 밥을 먹고, 셋째 날은 기차 시간이 저녁이지만 오전에는 출발해야 하고, 부산역 근처로 와서 꼭 돼지국밥을 먹고... 정말 친절하신 기사님.

사실 우리는 남편이 시간대별로 계획해온 여행 스케줄대로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저 "아, 그렇군요. 그럼 되겠네요!" 하며 맞장구 칠 뿐.


광안대교 건설 이야기, 동백섬 이야기로 넘어간 대화는 어느새 부산의 집값까지 이어졌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기사님의 의견과 조언까지 들었지만 불편했던 처음의 마음은 사라졌다. 재밌는 기사님을 만나 부산여행의 시작을 택시에서부터 느끼며 숙소까지 갈 수 있게 해 주신 기사님이 고마웠다.



숙소에서 보이는 해운대



차가 없는 우리는 숙소에서 식당으로, 식당에서 카페로 이동할 때마다 택시를 이용했다. 기사님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우리가 타고 내릴 때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며 활기차게 인사해주셨다. 예민한 데다 솔직한 아이들이 차에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말하면 말없이 창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춥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에어컨 세기를 줄이고, 이젠 덥다는 말에 에어컨 온도를 낮춰 주셨다.


물론 불편했던 택시도 있었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택시를 잊지 못한다. 긴팔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문신. 고막과 가슴까지 울릴 정도로 컸던 트로트 소리. 그 소리를 목청껏 따라 부르던 기사님의 목소리까지. 아이들도 무서웠는지 나에게 귀가 아프다고 소곤다. 나조차도 말 한마디 못하고 남편에게 카톡으로 무섭다는 메시지만 보냈다.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려니. 지나고 보니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2박 3일의 부산여행 일정 동안 11대의 택시를 이용하고, 11명의 기사님들을 만났다. 이번 여행의 추억 사이사이에 택시도 함께 새겨졌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부산여행. 첫 번째 택시여행. 잘 있어 부산. 또 올게.






점점 흐려지다가 결국 비가 내리고야 만 해운대.




정말 맛있었던 돼지 국밥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쉽 1등 바리스타가 창업한 항구뷰 카페.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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