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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l 01. 2022

시골에 있으면 해방이 필요해진다니까

시댁이 시골이면 생기는 이야기(2)



시골에 계시던 어머님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문선아, 나 지금 광주 집에 가는 길인데. 짐 싸서 서울 올라가려고 한다. 애들도 보고 싶고 너희 얼굴도 보려고. 버스 시간 보고 다시 전화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왜요? 갑자기요? 언제요?

물어보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모르는 체하고는

"네, 어머니. 전화 다시 주세요."

라고 대답했다.





아버님은 육군 소장으로 전역하셨다. 투스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머님의 뒷받침이 필수적인 시절을 사셨다.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지만, 옛날엔 달랐다. 남편의 뒤에서 부지런히 내조를 하고 투스타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당당하게 사시던 어머님이었다.


예쁜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패션을 사랑했다. 어느 것 하나 살 때도 '값이 나가도 제대로 된 물건'을 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물건을 골랐다. 비싸도 튼튼하고 오래 입고 쓸 물건만 구매했다.

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군인 남편을 따라 이곳저곳을 이사 다니며 터득한 삶의 방식이었다.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할 세상이기에 이사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어울려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갔다.


어디에서나 사람들과 잘 지내고, 밝은 성격을 가진 어머님은 아버님의 전역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디에서건 잘 자리 잡고 살면 되는 거라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두 분은 웃으며 시골로 가셨다.




하지만 코로나로 고립된 시골은 어머님 생각만큼 활기차지 않았다. 마을회관은 폐쇄되어 우울증에 걸린 할머니와 농사일을 위해 하루 3번 꼬박 챙겨야 하는 끼니까지.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까다로워진 입맛으로 어머님을 번거롭게 했고, 입에서는 "이제 죽어야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 온 집안을 한숨 쉬게 했다. 게다가 집안 보수로 집을 고치는 인부들 식사까지 챙겨야 했던 어머님은 진정한 돌밥돌밥을 경험했다.




사람은 어느 정도 내 시간의 보장이 있을 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바쁜 회사일을 하다가도, 육아를 하다가도 조금의 여유를 찾을 때 숨통이 트이곤 한다. 시골에서의 어머님은 숨통 트일 기회가 없었다.


논과 밭에 나가야 하는 할머니와 아버님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다. 외출 한번 못하고 갖가지 집안일을 하다가 점심을 차려내고, 해가 완전히 저문 밤이 되어서야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쉴 수 있었다.


눈을 뜨면 논과 밭과 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집과 자신의 집을 오가며 두 집을 모두 쓸고 닦았다. 시골에서는 친구 하나 없었고, 투스타 사모님이던 어머님도 없었다.

신발은 운동화. 활동하기 편한 바지와 티셔츠. 염색하지 못해 희끗한 머리.

액세서리는 아파트 화장대에서 나오지 못했고, 손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은 월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어머님은 시골사람이 되어갔다.


시골만 내려가면 이상하게 몰려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날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내버려 두고 무작정 짐을 싸서 혼자 광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고.




시골에 비가 오면 어른들은 행복하고 아이들은 심심해진다.



이제야 결말을 말하자면, 어머님은 서울에 올라오시지 않았다.


어려운 사정이 있던 오랜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광주에 있는 아파트에서 친구와 며칠밤을 함께 하셨다고 한다. 두 분이서 함께했던 며칠은 어머님에게도 친구분께도 많은 위로가 되었던듯싶다. 


나중에 만난 어머님은 그날의 며칠밤 이야기를 나에게 긴 시간 들려주었다. 친구의 사정과 몸에 맞지 않는 시골생활 이야기.

어머님은 시골생활이 많이 답답하셔서 우울해하신다. 말로는 "괜찮다.", "공기도 좋고 살기도 좋다."라고 하시지만 나이 80이 넘는 어르신들이 사는 마을에서 어머님은 외롭다. 많이 밝았던 분이라 더 안쓰럽다.


어머님, 해방하셔야겠어요.





시댁이 시골이면 생기는 이야기(1)

-우리는 시골이 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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