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수행
이 반경 8킬로 내의 활발한 온라인 활동이 Z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되었을지언정, 틴더의 세계는 여전히 무한하고 즐거웠다.
그때쯤, 나는 어느새 틴더로 몇 명의 남자들을 더 만났으며, 그들은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떤 남자는 나에게는 무리인 섹스 취향을 말해서 싱겁게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어떤 남자는 섹스 후 너무 성실하게 나에게 연락을 보내와서 나에게 차단당했다. 어떤 남자는 사진과 달라도 너무 달랐으며 어떤 남자는 키를 속이고 나왔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잊어가는 사이,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으며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본래 여름을 사랑하기 때문에, 도저히 연애 없이 여름을 보내는 게 상상 되질 않았다. 그때쯤 틴더로 남자 C를 만나게 되었다.
몇 남자들과의 만남 이후로 나는 점점 틴더도 ‘별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으로 만난다 한들, 그들도 내가 주변에서 만나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게 없었고, 이 정도면 틴더에서도 연애할 만한 상대를 고를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생기고 있었다.
남자 C는 내가 좋아하는 하얀 얼굴에 약간 벌어진 앞니를 가지고 있었다. 조금 바보 같은 그의 허허실실 한 웃음이 마음에 들었고, 넓은 어깨도 마음에 들었다. 나와 C는 종종 술에 취해 헤어졌고 주말이면 또다시 만났다.
순하고 착한 사람이었으며 나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도, 그렇다고 주는 것도 없는 그런 무난한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그의 특별한 것 없는 점이 나를 안심시켰고 어딘가 익숙하고 편안했다. ‘어쩌다 알게 됐어’라고 하기에 딱 알맞은,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섹스 없는 만남을 세 번이나 더 했고, 다섯 번째 만남에서 나는 틴더에서 만난 C와 결국 연애를 시작했다.
Z와 헤어진 지 어느새 7개월이 지나있었고, 이 정도면 다른 연애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우리는 농담처럼 누가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보면 ‘봉사활동에서 만났어요’라고 이야기하기로 약속해놓았으며, 틴더를 탈퇴하게 되었다. 틴더를 탈퇴할 때는 사유를 선택할 수 있는데, 객관식으로 물어보는 탈퇴 사유 중에는 ‘틴더로 인연을 찾았다’라는 식의 사유도 있다. 인연을 찾았다는 사유를 클릭하며 웃었다. 연애를 시작했으니 서로의 믿음을 위해 어플에서 탈퇴한 것이다.
오랜만에 시작하는 새 연애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상대는 당연하게 나의 일상을 물어볼 수 있었으며, 저녁 어느 시간은 꼭 통화를 했다. 내가 어딜 가는지, 장소를 어디로 옮기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새삼스러웠다. 연애를 쉰 지 불과 7개월 만에 나는 마치 혼자가 익숙했던 사람처럼 새 연애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그 노력보다는 무려 6년 만에 시작한 새 연애에 대한 즐거움과 설렘이 더 컸을 것이다. 나는 상대보다도 새 연애를 시작한 나의 모습에 더욱 설렜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이 그렇듯, 성실하게 연인으로서의 할 일을 수행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