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섹스 사이.
나는 슬슬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B와의 잠자리는 순리처럼 흘러가 나를 즐겁게 해주었지만, B가 원하는 바는 섹스보단 연애에 가까운 것이 분명했다. 그는 종종 나에게 ‘우리가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 귀찮은 질문에 매번 시간이 필요하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내 두 번째 틴더남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케이스였다. 나는 누군가 나와 연애를 하고 싶어 할 거라는 기대 같은 건 하지 않고 틴더를 시작해버렸고, 그는 아무래도 나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나는 과연 틴더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하는게 잘하는 일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하루하루를 애매하게 넘기고 있었다.
분명 그는 괜찮은 남자였다. 그는 내가 아프면 집에 죽을 만들어다 주고, 우리 집에 있는 몇 가지 시들어가는 재료들로도 리조또를 만들어줄 수 있는 부지런한 남자였다.
그는 내가 필름카메라를 쓴다는 걸 알고는 여행에서 샀던 일회용 카메라를 나에게 주거나 내가 읽을 책을 사오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금세 보고 와서 나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다정한 남자였다.
자연히 그럴 때마다 나는 Z에게 해주었던 많은 요리들을 떠올렸으며, 내가 줬던 선물들, 내가 받은 선물들도 떠올랐다. Z는 무심하리만치 나의 취향을 모르는 남자였고 센스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B의 선물과 비교해보게 되었다.
Z는 가끔 알 수 없이 비싼 볼펜이나 유치한 필통, 쓸모 있지만 낭만은 없는 도구 같은 걸 사오는 남자였고 B는 만난 지 몇 주 만에 내 취향을 알아내서 딱 맞는 선물을 내게 주곤 했다.
나는 Z와의 데이트에서 늘 Z의 취향을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종종 나는 내 취향이 아닌 그가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나는 내 취향에 대해 설명하는 것 보다는 상대의 취향에 내 일상을 맞추며 긴 연애를 해왔다.
B는 분명 Z에 비하자면 연애하기 딱 좋은 그런 사람이었다.
B를 만난 지 두 달 정도 되어가는 어느 날, 그가 이직 준비 중에 나의 회사와 가까운 위치에 직장을 찾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 회사로 이직할 셈이냐고 물었고, 그는 나와 같은 지역에서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크게 당황했다. 내가 기대한 만남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고 싶지 않았고 영향 받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나에게 종속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일종의 희열이나 우월감 같은걸 느끼면서 그 관계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B가 주는 마음에 취해 어느새 연애의 형태에 98%정도 가까운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은 2% 중 1%는 어플이라는 방식으로 연애하고 싶지 않은 나의 알량한 마음이었으며, 나머지 1%는 Z와의 연애에서 받지 못했던 것을 받고 싶어 하는 보상심리였다.
나는 이 관계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당분간 연애할 여유가 없다는 말로 그를 떠나보냈고, 그는 크게 실망해서 나에게 화를 냈다.
B를 실망하게 한 그날, 나는 틴더에 쌓여있는 대화상대들의 목록을 보며 생각했다. 지난 5년의 연애는 너무 길었고 나는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여 있었다. 그중 가장 간편한 방법이 어플이었기에 틴더를 시작했는데,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자꾸만 Z와의 연애에 빗대어 찾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혹시 Z에 대한 반감으로 남자들을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