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섹스 사이.
남자 B는 특이한 프로필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의 취미생활인 음악에 대한 사진들이 빼곡했고 얼굴 사진은 하나였다. 사실 내가 기대하는 잘생긴 얼굴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지만, 큰 곰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어쩐지 귀엽다 해야 할까, 착해 보인다 해야 할까. 나는 호기심에 대화를 시작했다.
그와도 역시 지하철 역에서 만났는데, 내 예상보다 굉장히 키가 큰 사람이었다. 우리는 내가 사는 동네의 어느 맛집이라는 식당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맛집을 찾아갔지만 문을 닫았었고,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 안주를 몇 가지 시켰다.
틴더에서는 크게 두 가지 부류의 관계를 기대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내가 A와 시간을 보낸 것 같은 FWB, 또 하나는 연애 인 듯 했다. 아무래도 남자 B는 A와는 달리 좀 더 연애를 기대하고 나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나는 전혀 연애에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연인이 되어 서로가 실시간으로 뭘 하는지 알려주는 대화는 지난 5년간 지겹게 해왔던 것이었다.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었고 때는 마침 크리스마스였다.
우리가 앉아서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도록 적당히 작은 소리로 틴더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몇 명이나 만나보았는지 대화를 하며 서로를 탐색하는 중에 안주가 하나씩 나왔다. 친구와 종종 오던 술집이라 몇 번 먹어본 안주였다. 소고기가 들어있는 달달한 간장 향의 샐러드였고 내가 그 샐러드를 집으려고 하기도 전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샐러드의 채소와 고기와 소스를 적절히 얹어서 내 그릇에 가득 담아주었다.
그 순간 나는 Z를 떠올렸고 조금 슬퍼졌다.
Z는 4년 전쯤엔 내 접시를 자기 쪽으로 가져가 뭔가를 가득 채워주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 접시는 늘 풍성했을 것이고 쉴 틈 없이 무엇이든 채워졌던 시간이 있었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가 나의 음식을 채워주었던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라도 Z가 내 접시를 채워주던 순간을 떠올리고 싶었는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은 유일했다. 교외의 어느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가 나올 때 즈음 내가 '나 물 마시고 싶어'라고 했던 것, 그리고 그가 귀찮다는 듯 나를 흘기며 일어서서 물을 떠 왔던 것. 뭔가 잘못한 걸까 싶은 마음으로 그 물을 마셨던 것.
울컥하는 마음을 B가 주는 안주를 넙죽 받아먹으며 삼켰고 그때부터 쉴 새 없이 나를 챙기는 B의 손을 말없이 보았다.
'왜요?'
라고 그는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고 나는 그냥 그 손을 보다가 그의 눈을 보다가 하며 신기하다는 듯 웃어 보일 수밖에.
두 번째 만남에서 고깃집을 갔을 때도 그는 내가 젓가락을 들 필요도 없이(정말로 그랬다) 숟가락에 고기와 반찬을 끊임없이 얹어주었고 나는 아기새처럼 그것들을 받아먹었다. 한입에 하나씩 무엇인가 부족했던 것이 충족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인가에 허기를 느끼고 있음은 분명했지만 고작 이런 것, 이런 사소한 친절이라니. 이렇게 의지하는 방식이라니. B가 데이트에서 나에게 섬세하게 챙겨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허전했던 구멍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견디기가 힘들었다. 세 번째 데이트가 끝나고 나는 친한 친구에게 Z에 관한 메시지를 몇 개 날렸다.
'5년의 시간은 대체 뭐였을까?'
나는 더 이상 이 전의 연애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떠올리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