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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태리 Jan 18. 2019

틴더

틴더를 시작했다.



얼마 전 5년 간의 연애를 끝내는 바람에 나는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떨어졌다.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언제든 의지하던 존재, 다사다난했던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한 존재를 내 손으로 보내는 건 생각보다 좀 더 섬이 되어버리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너른 바다에 피어나버린 섬이 되어버린 기분과, 동시에 아주 두껍고 좁은 네 귀퉁이가 있는 벽 속에 가로막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때때로 술에 취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울었으며 나의 동거인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 또한 그랬다. 이 어쩔 줄 모르겠고 짜증 나는 기분을 무엇으로든 대체하고 싶었다. 그때는 연말이었고 29살이 될 참이었다. 나는 5년간의 연애로 스스로를 속박했던 자유를 만끽함으로써 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어졌다.

데이트 어플을 통해 나의 슬픔을 한없이 가벼운 곳에 해소하리라. 데이트 어플은 종류가 꽤나 다양했다. 개중에는 고상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를 탐색할 수 있는 어플도 있었으며, 외모와 직업으로 점수를 매겨 상대를 평가할 수 있는 어플도 있었다.

아니, 나는 그보다 더 세속적이고 직관적이고 가벼운 것이 필요했다. 짜증나는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린 그날 밤, 나는 틴더를 다운받았다.


흠. 쉬운 어플이었다.

우선 등록할 프로필 사진을 골랐다. 실제로 얼굴을 보게 될 사람들이라는 가정 하에 너무 잘 나온 사진은 곤란했고 적당히 잘 나온 사진을 골라야 했다. 몇 십 분 만에 나는 나의 자랑인 목과 어깨가 잘 나온 사진, 그러면서도 동시에 활달해 보이는 사진을 골라 등록했으며 본격적으로 어플을 시작했다.


정말 세속적이고 새로운 것들이 내 앞으로 쏟아지더라. 나는 반경 8킬로 내의 남성을 볼 수 있도록 선택했는데 (틴더에선 남자-남자, 여자-여자도 선택할 수 있다.) 다양한 얼굴의 향연에 더불어 몸 자랑, 차 자랑, 학교 자랑, 직업 자랑... 스스로를 어필하기 위한 각종 수단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조건으로 분류되는, 즉 외모 이외의 자랑거리들. 사진을 기반으로 하는 단순한 어플 구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였을 것이다.

그때 내가 사람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얼굴’이었다. 어떤 얼굴이냐 하면 실연의 슬픔에 빠진 나를 위로해줄 만한 아주 좋은 얼굴. 나는 하얀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깨끗한 얼굴, 긴 눈에 선비님같이 생긴 남자들을 골랐다. 고르다 보니 사진 취향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스스로 찍은 셀카보단 남이 찍어준 자연스러운 사진이 더 좋았다. 그러다 보니 셀카를 찍은 남자들은 대부분 거르게 되었다. 슬프게도 나의 이런 구체적인 취향을 반영한 남자들이 별로 많지 않아 까다롭게 사진을 골라내야 했다.

나는 진흙 속에서 좋은 진주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늦은 밤 시간까지 몇 명에게 힘껏 오른쪽 스와이프를 날려주었다.


절대적으로 남성이 많은 데이트 어플인지라 내가 고른 남자들과의 매칭은 어렵지 않다. 이 사이버 세상은 마치 대규모 양식장처럼 아무리 스와이프를 해도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는 생각보다 넓고 깊은 곳이더라. 나는 아주 간편하게 몇 명의 남자들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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