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틴더남
사실 처음 보는 이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첫 만남이 다 그렇듯, 틴더에서 매칭 된 사람들이 채팅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로의 공통점을 알아내는 것이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대체로 만남의 동기가 되어줄 유일한 친밀함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좋아하는 영화, 음악, 여행 같은, 좋아 보이는 문화생활에 대해 치열하게 맞춰가곤 한다.
'운동 좋아하세요?'
틴더에선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의 건강함(아름다움)이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적어도 그때 나에게는 중요했다.
첫 번째 만난 남자 A와도 이와 같은 질문이 오갔다. 그는 다행히 운동을 즐겨하는 남자였으며 한 번도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나에게 FWB(friend with benefits. 연애가 아닌 성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른바 섹파)를 원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다음과 같은 대화들이었다.
'운동 좋아하세요?'
'틴더를 하는 이유는?'
'연애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놀고 싶어서.‘
나는 금방 그가 원하는 것을 캐치했고, 꽤나 호기심이 넘치는 상태에서 그를 만나보기로 결정한다. 눈이 길고 아래로 처진 남자였다. 혼자 살고 있어서 퇴근 후엔 늘 심심하다며 어서 만나자는 그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지난날 Z와의 연애가 저절로 떠올랐다.
첫 번째 연애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Z와는 처음이었다. 5년을 만나면서 나에게는 평생 단 Z 한 명과의 섹스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생겼었다. Z와 헤어진 후 여러 사람과의 잠자리가 궁금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호기심으로 틴더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A는 그런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은 은근하게 뒤로 돌려서 불식시켜주는, 틴더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만나기에 참 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평일 퇴근 후였는데, 어쩐지 주말에는 A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사원인 나에게 누군가와 주말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인 경우에 허락되는 일이었고, 주로 그 의미 있는 일은 데이트였다. 나에게 A와의 만남은 물론 흥분되는 일이긴 했지만, 그땐 일종의 오기 같은 것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얻거나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A를 만나기로 결심한 때는 연말이었고, 그때의 서울은 온통 노란 불빛, 작은 전구들로 반짝거리는 낭만적인 도시였다. 아마도 내가 헤어진 지 얼마 안가서 유독 쓸쓸함을 느낀 것에는 그 분위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평일은 쏜살같이 지나서 며칠 후 A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 일하는 곳 가운데 즈음에서 만나기로 했고 내가 먼저 지하철 역 앞에 도착해 A를 기다리게 되었다.
'저 도착했어요'
지하에서 올라오는 머리 꼭대기를 발견하고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사진에서 본 얼굴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분명 눈, 코, 입은 같은데 말이지... 어깨는 내 생각보다 좁고, 키는 거짓말일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180 정도 되어 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다르다 해야 할까, 좀 덜 조화롭다 해야 할까. 아마 그도 내 사진을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우리는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왠지 위험하면서도 흥미로운 표정을 주고받았다. 실물과 어떻게 다르다는 둥. 보조개가 있다는 둥. 서로가 어깨를 간간히 부딪혔지만 손은 잡지 않은 채 의식하며 걸었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식거리, 콘돔을 샀고 모텔에 들어가 치킨을 시켰다.
"여동생 있어요. 친하냐고요? 아니."
"소주 두병 정도."
"가장 자신 있는 곳? 코."
"5명 정도."
우리는 침대에 앉아 치킨을 먹으며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기이한 질문들을 했다. 서로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하는 대화,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일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질문들이었다. 오로지 서로가 안전한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흥미로운 사람인지만을 탐색하는 대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잠자리는 꽤 만족스러웠고 섹스가 끝나고 나니 나는 서둘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자고 가라 했지만 나는 얼른 집에 가서 이 기분 그대로 잠들고 싶을 뿐이었다. A와 나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에 집에 돌아와 내 바디워시로 씻고 내 로션을 몸에 바르며 그제야 어딘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섹스를 하기 전 나는 무엇인가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Z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헤어진 후에도 습관처럼 나를 보호하고 있었고 마치 엄마의 잔소리처럼 내 머리를 떠돌았다. 하지만 그게 보호감, 책임감이었던 시간은 이미 지났고 나는 일말의 죄책감, 후회 같은 것을 느꼈던 쓸모없는 순간들을 모두 씻어낼 필요가 있었다. Z의 감각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나는 긴 연애 기간 동안 서로를 책임지고 묶어두며 생겨났던 반사적인 죄책감에 사로잡혀있었으며, 그날 새벽 화장실에서 그 중 일부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